금리 높다고? "우린 국채보다 싸게 빌린다"
by이태호 기자
2008.01.25 12:30:00
외화표시 채권 발행해 낮은 스왑금리로 원화 조달
"외표채 발행 기회는 일부 우량기업에만 편중" 한계
[이데일리 이태호기자] 일반 기업들이 정부 수준의 저렴한 이자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달 들어 회사채 발행을 확정(혹은 완료)한 현대백화점(069960), GS건설(006360), 현대산업(012630), KT(030200) 등이 그들. 모두 동일한 신용등급 회사채의 시장 금리보다 눈에 띄게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했고, 일부는 사실상 위험이 없는 국고채 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구했다.
외화표시 채권 발행을 통해 차입한 외화를 값싼 금리로 원화와 스왑(swap; 교환)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지난해 12월초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국제 자금시장에 대규모의 유동성을 풀면서 국내 기업들의 외자 조달에 숨통이 트였지만, 조선업체를 중심으로 수출기업들의 선물환 매도가 이어지면서 국내 스왑 가격 왜곡은 오히려 심화된 데 따른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위험없이 국내채권에 투자해 막대한 금리 재정거래 이익을 누리는 것과 같은 구조다.
"국고채보다 낮은 금리에 원화 자금을 조달했죠."
25일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발행한 달러표시 변동금리부 채권을 원화 표시 고정금리로 환산할 경우 금리 수준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지난 16일 6000만달러의(565억원)의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다. 발행 금리는 3개월물 리보(LIBOR; 런던은행간금리, 발행일 기준 4.00%)+가산금리 1.00%포인트로 정해졌다. 자금 조달 목적은 어음(CP) 상환이다.
어음을 상환하려면 달러가 아닌 원화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 굳이 달러화로 회사채를 발행한 것은 최근 통화스왑(CRS) 금리가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이 달러화를 상대방(주로 은행)에게 주고, 원화를 받는다. 이후 현대백화점은 은행에 원화로 CRS 금리를 주고, 은행은 리보금리를 달러로 지급하게 된다. 현대백화점이 실제로 부담하는 금리는 CRS 금리에 해외채에 붙은 가산금리를 더한 수준에서 정해진다.
최근 CRS 금리는 국내 달러 품귀 현상으로 인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3년 만기물의 경우 지난해 7월 4.9%까지 상승했다가 최근 3%를 밑돌고 있다.
따라서 현대백화점의 경우 현재 시점 기준으로 보면 CRS 3년물 금리 3%에 가산금리 1.00%포인트를 더한 4% 내외에 565억원의 원화를 조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국고채 3년물 시장 금리 5.1%보다 훨씬 낮다.
마찬가지로 최근 GS건설은 리보 6개월+110bp 조건에 달러채 발행을 확정 지었고 현대산업개발은 리보 3개월+140bp, KT는 유로엔 티보(Euro Yen TIBOR) 3개월+60bp에 대규모 외화표시 채권을 발행했다.
외화표시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이처럼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지만, 모든 기업들이 외화로 채권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달러화 유동성이 풍부하지 못할뿐더러, 외화 자금줄을 쥔 투자자들이 매우 까다로운 기준으로 투자 대상 기업을 선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외화표시 채권 발행에 참여한 한 증권사 직원은 "외화로 회사채를 발행하고 싶어도 엔드(end, 투자자)가 있어야 하는데, 은행들이 대부분 AA 등급 미만의 기업들은 관심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A 등급 이상이라 하더라도 대기업 계열사를 선호한다든 지, IR(기업설명) 활동을 잘 하는 기업들 정도에만 투자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이나 GS건설과 신용등급이 같은(AA-) 대림산업(000210)의 경우 최근 국고채 3년+150bp의 금리에 15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다. 지난 18일자(청약일 직전 거래일)로 확정된 발행금리는 6.82%다.
현대백화점이나 GS건설과 비교해 훨씬 더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시장의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외화표시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CRS 시장을 이용하면 자금 조달 비용을 많이 낮출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적당한 투자자를 찾는 것이 발행 성공의 최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25일 오후 12시1분에 유료뉴스인 '마켓프리미엄'을 통해 출고된 기사를 재출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