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에 한잔, 황홀한 야경에 또 한잔
by조선일보 기자
2006.08.24 11:59:22
[조선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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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나무 사이로 이슬람 사원의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오후 7시’. 서울 이태원 ‘올 댓 재즈’ 건물 옥상에서 파티가 시작된다. ‘올 댓 재즈’ 진낙원(맨오른쪽) 사장과 친구들이 와인 잔을 들어 건배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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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9월. 여름도 끝물이다. 늦은 여름, 이른 저녁. 서울 이태원의 유명한 재즈클럽 ‘올 댓 재즈’가 자리잡은 3층짜리 건물의 옥상에서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장 진낙원(49)씨가 재즈, 그리고 여행을 통해 만난 오랜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다. 멀리 이슬람 사원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이태원의 색색 빛깔 야경이 옥상에서 자라는 몇 그루의 작은 포도 나무, 30년이 넘은 LP 플레이어, 음식 차린 테이블을 감싼다.
‘올 댓 재즈’ 옥상 파티 암호는 ‘포도나무 사이로 이슬람 사원의 불빛이 반짝인다’. 그러니까 ‘이슬람 사원의 불이 켜지는 오후 7시에 모여, 불이 꺼지는 새벽 4시까지 함께 하자’는 뜻이다. 어느새 시원해진 밤 바람이 바비큐 그릴의 연기를 멀리 몰아가버린다. “옥상 파티는 자유로워서 좋아요. 실내는 답답하잖아요.” 진 사장의 말. 장마 때는 천막 치고, 한 겨울에는 불판 열기에 손 녹이며 고기 구워 먹을 정도로 옥상을 좋아하는 친구들이지만, 올 여름에는 다들 바빠 지난 18일 파티가 첫 모임이었다. 이곳 옥상은 음악 애호가들이 원하는 음악을 실컷 듣는 공간이기도 하다. ‘올 댓 재즈’에서야 재즈 라이브 밖에 들을 수 없으니 옥상이야 말로 앰프를 설치하고 각자 수집한 앨범을 들고 와 마음껏 듣고 가는 곳이다.
LP 플레이어에서 아티 쇼(Artie Shaw)의 스윙 재즈 ‘문 글로우’ (Moonglow)가 흐른다. “이야~ 분위기 죽인다!” 사진작가 이경업(45)씨가 외친다. 노을을 등지고 섰던 만화가 박문윤(63)씨가 ‘야! 막걸리 있냐?’라며 걸쭉하게 묻는다.
이날의 옥상 파티를 위해 아르메니아에서 온 ‘올 댓 재즈’ 주방장 토니가 차려낸 ‘메뉴판에는 절대 없는’ 특식은 ‘아르메니아식 훈제 돼지 갈비’. 또다른 특별 메뉴는 ‘돌마데스’. 숙성시킨 포도나무 잎에 고기와 쌀을 싸서 익힌 그리스 음식이다. 알고 보니 다들 미식가다. 여름에는 장어, 가을에는 송이를 굽는다. “송이 피자 못 먹어 보셨죠?” 그러면서 방송작가 최승희(37)씨가 덧붙이는 말. “다들 이곳에서 올려다 보는 하늘이 좋아서 모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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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저녁 경기도 용인시 신봉동 3층 주택 옥상. 이곳에는 별다른 음악도 없고 이국적인 상차림도 없다. 여름 밤 옥상 파티의 기본 메뉴인 돼지고기, 그리고 소주가 전부다. 아직은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홍기찬(23)씨. “삼결살과 소주 사오면 옥상을 무료 개방하겠다”고 친구들을 부르곤 한다.
초대 받은 손님 박준우(23·대학생)씨가 들어서는데, 손에는 고기 담은 비닐 봉지를 들었다. “1만원 밖에 없어서 삼겹살 대신 앞다리살 한 근 반 사왔다, 술은 있지?” 김민섭(23·대학생)씨는 아예 이리 저리 뒹굴기 편한 트레이닝 복 차림. 숯불에 불 붙이고, 고기 굽는 등 노동으로 술값, 고깃값, 자릿값을 대신 했다.
빼어난 야경은 없지만 멀리 보이는 아파트 불빛이 정겹다. 시원할 뿐 아니라 술집과 달리 조용해서 좋다. 옥상에서 멍하니 내려다 보면 지나가는 차 불빛 마저 분위기 있다. 고기냄새를 맡고 마당에서 애완견 ‘줄리’가 컹컹 짖으며 난리가 났다. 옥상서 마당으로 한 점 던져주니 조용하다. “기분이 좋아 평소 주량보다 소주 한 병이 더 들어간다”는 박준우씨의 말에, “우리 집 소주 다 없어진다”라고 홍기찬씨가 질색한다. “옥상은 우리집이라 편할 뿐 아니라, 때론 어디로 외출한 듯 낯선 기분이 들어 좋다”는 홍씨가 친구를 위해 아버지 양주를 몰래 빼온다. 이들의 옥상 파티도 일찍 끝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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