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기훈 기자
2014.12.25 15:43:56
약 1600억 매수..일주일새 400억 차익난 셈
평소 신중한 투자스타일 비해 이례적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국내 최대 투자자문사인 케이원투자자문이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인 제일모직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진두지휘한 ‘은둔형 고수’ 권남학 대표의 과감한 결단이 주목받고 있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케이원자문은 지난 18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제일모직 주식 약 150만주를 시초가인 주당 10만6000원에 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총 매수금액만 약 1600억원으로, 9월 말 기준 케이원자문의 투자 일임계약 자산총액(계약금액) 2조884억원의 5.5%에 달한다.
운용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자문사가 단일 종목에 투자한 규모로 상당한 액수인 것은 물론 웬만한 자산운용사도 쉽게 ‘지르지’ 못할 수준의 금액이다. 지난 24일 제일모직 종가는 13만3000원. 당장 케이원자문이 보유한 제일모직 주식을 전량 매도한다고 가정하면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는 기간에 무려 40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당초 업계에선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제일모직에 베팅할 경우 수익은 떼놓은 당상일 것이라고 하면서도 회사 자체의 성장성이나 상장 후 주가 흐름에 대해서는 자신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상장 당일 외국인 투자자들이 4500억원에 달하는 제일모직 주식을 내다 판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원투자자문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제일모직을 대거 사들이는 ‘베팅’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케이원자문의 예상은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제일모직은 거래된 지 닷새 만에 시초가 대비 25% 넘게 뛰었다. 반신반의하던 증권가도 제일모직의 주가 흐름과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들어 당초 9만~10만원선이던 목표주가 올리기에 나섰다. 현대증권은 최근 제일모직 분석을 시작하면서 목표가를 20만원까지 제시했다.
이번 베팅은 그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권남학 대표의 작품이다. 은둔형 고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탓에 세간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권 대표는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투자 고수 중에서도 고수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 펀드 매니저 출신인 그는 2005년 창업 후 2009년에 교직원공제회 자금 1000억원을 맡아 이를 3배 넘게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 뛰어난 성과에 만족한 교직원공제회가 자금을 더 맡기려 하자 규모가 크면 운용이 어렵다고 고사하기도 했다.
2010~2011년에는 랩어카운트 돌풍을 일으키며 케이원자문을 일약 국내 대표 자문사로 키워냈다. 그의 운용실력을 입소문으로 듣고 찾아오는 자산가들이 늘면서 랩어카운트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서자 덩치가 너무 커지면 기존 투자자들의 수익률 관리에 소홀해질 수 있다며 더는 자금을 받지 않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증권가에서 유명한 일화다.
랩어카운트 시장에서 같이 두각을 나타냈던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대표와는 경북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로, 같은 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택동 레이크투자자문 대표와 함께 ‘경북대 3인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평소 신중한 종목 선택과 보수적인 투자전략을 고수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권 대표의 과감한 베팅이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 운용사 최고운용책임자(CIO)는 “권 대표는 자기 소신이 강하고 신중하게 투자하는 스타일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며 “그만큼 제일모직에 대해 확신을 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언론 노출을 피하는 권 대표의 성격처럼 케이원자문 측도 제일모직 매수와 관련한 질문에 “죄송하지만 확인해 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