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조 퍼부어도 "못 해먹겠다"…中 전기차·태양광·반도체 파산 속출
by방성훈 기자
2024.08.09 10:22:03
전기차 대기업 최소 8개·중소까지 5.2만곳 파산 추정
반도체 관련 업체도 1.1만곳 문닫아…하루 30개 꼴
태양광 부품값 폭락에…"소형 공급업체 파산 잇따라"
中제조업 전반 과잉 공급·경쟁…상반기 30%가 손실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중국 전기자동차, 태양광 모듈, 반도체 업계에서 과잉생산 및 이에 따른 경쟁 심화로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기차, 태양광 모듈, 반도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제조업 분야다. 보조금을 비롯한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중국은 전기차와 리튬이온배터리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태양광 패널 시장도 중국이 80% 이상 점유하고 있다. 태양광 산업의 공급망은 중국을 중심으로 구축됐다. 미국과 글로벌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반도체 산업은 사상 최대 3440억위안 규모의 ‘빅 펀드’를 조성해 천문학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지원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공급 과잉 및 경쟁 심화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이들 업계에서 파산하는 기업도 급증했다.
| 중국 동부 장쑤성 쑤저우항 타이창항 국제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선적 대기중인 비야디(BYD)의 전기자동차.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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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가 세 산업 부문을 자체 조사한 결과, 중국 전기차 업계에선 작년 초부터 최소 8개의 대형 제조업체가 생산 또는 영업을 중단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약 5만 2000개의 전기차 관련 기업이 문을 닫았다는 추정치도 있다. 전년대비 약 90% 증가한 것으로, 공급망 전체에 파장을 미칠 수 있는 규모다.
대표 사례들을 살펴보면 칭다오 하이테크 모듈스(Qingdao Hi-Tech Moulds)는 올해 초 성명을 내고 전기차 제조업체인 하이파이(HiPhi)의 생산 중단으로 순이익이 최대 60%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다른 전기차 제조업체인 레브데오도 지난해 파산했으며, 이 때문에 공급업체, 대리점 및 은행에 40억위안의 미지급금이 발생했다.
파산 절차가 진행 중인 자동차 산업 물류 공급업체 상하이자동차 안지 로지스틱스(SAIC Anji Logistics)는 최근 전기차 제조업체 아이웨이즈(Aiways)가 대금을 지불하지 못한 것이 회사가 무너진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아이웨이즈 역시 지난해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이외에도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가 소유한 전기차 제조업체 헝치(Hengchi)가 지난 5일 투자자들에게 자회사 두 곳이 파산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당초 2025년까지 연간 100만대의 전기차 판매를 목표로 세웠으나, 과잉생산에 따른 업계의 치열한 경쟁으로 지난해 1389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과잉생산 및 이에 따른 경쟁 심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는 비단 전기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실제 중국 국가 통계국에 따르면 약 30%의 제조업 회사가 6월 말 기준 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기간에 기록한 종전 최고치를 넘어선 것이다. 50만개 이상의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올해 상반기 경영환경이 악화해 손실을 냈다고 답한 업체 수가 44% 급증했다.
| 중국 일루바타 코어엑스가 지난달 6일(현지시간) 상하이에서 열린 ‘2024 세계 인공지능 대회’(WAIC)에서 반도체 칩을 공개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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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모듈 산업에서는 공급 과잉으로 대부분의 부품 가격이 평균 생산 비용보다 낮아졌다. 태양광 패널 가격은 지난해 반토막 난 데 이어 올해 25% 추가 하락했다. 태양광 부품 제조업체인 하이타이 솔라(Haitai Solar)는 앞으로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부분의 업체가 생산을 줄이고 있다. 중국 내 태양광 공장의 전체 생산 용량은 전 세계 수요의 두 배를 충당할 수 있는 규모지만, 가동률은 50~60%에 그치고 있다. 업계를 주도하는 대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현금을 비축하기 시작했으며, 이들 기업이 주문을 내지 않아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급증했다. 투자은행 나틱시스의 앨리샤 가르시아 헤레로는 “다른 많은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태양광 산업에서 최대 압박은 소규모 부품 공급업체들의 수익 악화”라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지방정부들이 시장 점유율을 쉽게 확보하기 위해, 즉 보여주기식 성과를 내기 위해 저가형 칩 부품 투자에 집중하면서 공급 과잉을 유발했다. 이 때문에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기업 데이터를 수집하는 치차차(Qichacha)에 따르면 지난해 약 1만 1000개의 칩 관련 업체가 영업을 중단했다. 하루에 약 30개 꼴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시 주석이 선호하는 전기차, 태양광 모듈, 반도체 부문은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의 직접 투자 및 보조금, 저리 대출 등에 힘입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최근 중국 경제가 약화하고 소비가 침체되면서 이들 산업에서 파산하는 기업이 급증했다”고 짚었다. 이어 “수많은 지방정부들이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탓에 어려움에 처한 기업에 대한 지원도 인색해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