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항로 2곳 동시 위기…물류·에너지 대란+인플레 공포 확산
by김은경 기자
2024.01.14 18:09:57
막혀버린 홍해 항로…車·배터리 긴장 속 예의주시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도 위기…유가 들썩
사태 장기화 땐… 에너지·물류 동시 대란 현실화
인플레 영향 미칠 수도…‘금리 인상’ 선회 가능성
[이데일리 김은경 하상렬 기자] 글로벌 핵심 교역 항로인 홍해에 이어 에너지 수송의 ‘동맥’과도 같은 호르무즈 해협이 동시 다발적으로 군사분쟁에 휩싸이면서 우리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자칫 중동발(發) 공급란 대란이 불어닥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지면서다. 하향 안정화를 보여왔던 국제유가 역시 다시 꿈틀대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지난해 11월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사진으로 예멘 후티 반군의 헬기가 홍해 지역에서 자동차운반선인 갤럭시 리더호에 접근하는 모습.(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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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업계 및 외신 등에 따르면 홍해·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우리 경제의 핵심 공급망 길목이 동시에 지정학적 위기에 휩싸였다. 홍해의 수에즈 운하는 세계 무역 물동량의 10~15%를 담당하며 컨테이너 물동량 비중은 전체의 30%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각 물동량의 16%와 원유 수입의 72%를 각각 담당하는 항로로 잘 알려진 곳이다.
지난달 중순부터 길목이 막힌 홍해 사태로 인해 글로벌 물류 대란은 이미 현실화 단계에 진입했다. 실제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수송로가 바뀌면서 부품이 부족해진 탓에 오는 29일부터 2주 동안 독일 베를린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우리 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특히 수출 주력품목인 자동차와 배터리 및 소재 업계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공장들이 중국에 핵심 부품을 의존하고 있는데, 홍해가 유럽과 중국을 잇는 주요 경로이기 때문이다. 수출 기업들은 홍해 항로를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면서 운항 거리가 기존 대비 15일 이상(왕복 기준) 늘어난 탓에 운송기간과 물류비 부담이 커진 상태다. 이에 해운업계는 물류 대란 해소를 위한 선박 긴급 투입에 나서고 있다. 국적 선사 HMM은 유럽·지중해 노선에 임시 선박 4척을 투입하기로 했다.
반면 반도체의 경우 항공편으로 수출돼 바로 큰 차질이 빚어지진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까지 봉쇄될 경우 국내 수입의 약 70%를 차지하는 원유와 천연가스(LNG)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1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전 거래일 대비 0.9% 오른 배럴당 72.68달러에 마감했다. 국제유가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장중 한때 4% 급등해 올해 들어 처음으로 80달러를 넘어섰으며 전 거래일 대비 1.1% 상승한 78.2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천연가스 가격도 뛰었다. 2월 인도분 천연가스 가격은 12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장중 한때 전장 대비 4.4% 오른 100만BTU당 3.241달러에 거래됐다. 걸프 해역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이라크·이란·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의 해상 진출로로, 전 세계 천연가스의 3분의 1, 석유의 6분의 1이 지나는 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국내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도입에 차질이 없는 상황이다. 중동 인근에서 항해·선적 중인 유조선과 LNG 운반선이 모두 정상 운항 중이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정유사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원유 가격이 상승해 마진 축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전체 원유 물량의 70%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로 해상 운임이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해운업계는 수혜가 예상된다. 지난 12일 기준 세계 컨테이너 운송 시장 스폿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206.03을 기록해 지난주 대비 16% 올랐다. SCFI가 2000선을 넘어선 것은 2022년 9월 23일 이후 약 1년4개월 만이다.
전문가들은 중동 정세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인플레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행으로선 ‘대외경제 불안 리스크가 완화됐다’는 기존 스탠스를 바꿔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은은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동결하면서 국제유가, 중동사태 등 해외 리스크가 완화돼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필요성이 낮아졌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한은 설명은 유가가 다시 상승한다면,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중동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있다”면서도 “중동 지역은 국제유가와 운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리스크로 감안하고 있어야 한다. 추이를 보면서 점검하겠다”고 했다. 한은은 내달 22일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연간 물가, 경제 전망 등을 발표한다. 지난해 11월 올해와 내년 연간 물가 상승률을 각각 2.6%, 2.1%로 전망했다. 경제 성장률은 각각 2.1%, 2.3%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