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풀리지 않는 '유병언 미스터리' 4가지

by김정민 기자
2014.07.27 15:56:37

타살 가능성은 낮아..목졸림 확인 못해 의혹 남아
안경·지갑 평소 소지 안해..도주중 분실 가능성도
검찰 10억 돈가방 2개 외 더 있을 가능성 두고 수사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됐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최근 변사체로 발견된 이후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300여명의 승객이 차가운 물속에서 목숨을 잃은 최악의 참사와 그 원흉으로 지목받았던 인물의 처참한 죽음. 드라마보다 잔혹하고 미스터리한 현실이다. 유씨 사망과 관련돼 주요 의혹들을 되짚어 봤다.

유씨의 변사체 발견 이후 가장 많은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은 유씨의 사망 원인과 사망 시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유씨의 사인을 밝히는 데 실패했다. 국과수는 지난 25일 감식 결과를 발표하면서 시신이 유씨의 것은 맞지만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사인을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타살 가능성은 정밀감식 결과 현저히 낮아진 상태다. 국과수는 뼈에서 골절이나 흉기로 피격된 흔적을 찾지 못했고 약독물 및 음주 검사에도 음성 판정이 나왔다. 다만 목 부근 조직이 부패 등으로 훼손돼 목 졸림이나 질식사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또 내부 장기 등도 유실돼 지병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도 확인하지 못했다.

법의학계에선 저체온증으로 인한 자연사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다. 고령의 유씨가 오랜 도피생활로 지친 상태에서 야산에 숨어들었다가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숨졌을 것이란 추정이다.

자살 가능성 또한 낮게 점쳐진다. 자살을 죄악시하는 종교인이자 검찰의 포위를 피해 장기간 도주 행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도 건강 관리를 위해 음식물을 가려먹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유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인물이 마지막까지 유씨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운전기사 양회정(수배 중)씨다. 검찰이 유씨가 숨어 있던 별장을 급습했던 지난 5월 25일 양씨는 별장 인근에 머무르다 전주로 도주했다. 그리고 한 장례식장 CCTV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특히 유씨는 전주에서 지인에게 “유 회장을 숲 속에 홀로 남겨두고 왔다. 같이 찾으러 가자”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가 유씨의 마지막 모습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유씨 변사사건과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 중 하나가 유류품 품목 중 안경과 지갑이 빠졌다는 점이다.

유씨 시신 발견 후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 3일만에 은신했던 별장에서 800m 떨어진 지점에서 검은색 뿔테 안경 한점을 찾아냈다. 경찰은 유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안경이 유씨의 이동 경로와 사인을 밝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안경은 발견된 장소인 매실밭의 주인 윤모(77)씨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25일 유씨와 순천 송치재 별장에 함께 머무르다 검거된 아해프레스 직원 신모(33·여)를 인천구치소에서 만나 확인한 결과 유씨가 평상시 안경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했으며 안경은 필요할 때만 썼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부에 공개된 사진마다 안경을 착용하고 있으며 유씨가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행사에서 격파 및 유도 시범 등을 보일 때도 안경을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증언은 믿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씨가 신분증이나 현금을 전혀 소지하지 않다는 점도 의문점으로 제기된다. 추적이 가능한 신용카드와 신분증은 폐기했을 수 있겠지만 10억원에 달하는 도피자금을 현금으로 갖고 있던 유씨가 빈손으로 도주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검찰 급습으로 유씨가 급히 도주하느라 무거운 돈가방을 챙길 여력이 없었을 것이란 추정과 함께 유씨가 평소 지갑을 측근들에게 맡기고 직접 소지하는 일은 드물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유씨가 도피 행각 중에도 측근들에게 돈 관리를 일임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유씨는 당초 현금 20억원이 든 가방을 들고 도피 중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검찰이 유씨가 은신해 있던 순천 송치재 별장내 2층 비밀공간에서 발견한 것은 현금 8억3000만원과 미화 16만 달러가 든 돈가방 2개 뿐이다. 검찰은 당초 ‘20억 돈 가방설’이 와전됐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유씨는 지난 5월 4일께 측근 추모(60·구속)씨의 소개로 주민 A씨를 만나 인근 농가와 임야 500㎡를 사들였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유씨가 5만원권이 가득 든 여행용 가방에서 현금 2억5000만원을 꺼내 땅값을 치렀는데 가방이 사과상자 2개 크기인 점으로 미루어 20억원 가량이 들어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고 증언했다. 이후 수사당국은 유씨가 20억원 가량의 현금을 들고 도주 중인 것으로 판단해 왔다.

검찰은 “대금은 유씨가 아닌 추씨가 지불했고 20억원이라는 액수도 가방 크기 등을 감안해 추정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검찰은 별장에서 발견된 돈가방 외에 또다른 돈가방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 중이다.

검찰과 경찰은 공조 미흡으로 인한 부실수사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검찰은 송치재 별장 비밀방에서 돈가방 2개를 발견하고도 한달 가까이 경찰에조차 알리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이를 공개했다. 경찰은 검찰이 사전에 이 같은 정보를 공유했을 경우 수색 범위를 대폭 좁힐 수 있었고 유씨가 돈가방을 두고 빈손으로 도주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주변 수색 및 변사체 신원 확인에 좀더 공을 들였을 것이라고 분개했다.

유씨의 장남 대균(44)씨 검거에서도 불협화음은 여전했다. 대균씨가 검거된 지난 25일 오후 4시께 인천지검은 브리핑을 갖고 “대균씨가 이달 말까지 자수하면 선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시각 경찰은 대균씨가 은신해 있던 용인 오피스텔에 대한 정보를 입수, 체포작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불과 3시간도 안된 오후 7시께 경찰이 대균씨 검거에 성공하면서 검찰은 체면을 구겼다.

검·경간 공조가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조속한 검거”를 질타했을 만큼 국가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사안이라는 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권 독립 문제로 대립해온 검·경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사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상호간 정보 공유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뿌리 깊은 검찰의 경찰에 대한 불신 또한 검·경간 공조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 출석해 “유씨가 돈가방을 찾기 위해 측근을 보낼 수 있다고 판단, 보안을 위해 경찰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경찰을 통해 검찰이 이미 돈가방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사실이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