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용카드는 빚".. 체크카드로 현명한 소비생활 정착
by이현정 기자
2013.04.02 12:00:29
| 한 영국인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은행업무를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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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이데일리 이현정 기자]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이상한파와 폭설이 들이닥친 영국 런던 중심부의 대형 할인마트 테스코(Tesco)에는 늦은 저녁 시간에도 식료품을 사려는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한파를 대비해 미리 장을 봐두려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지만 10명 중 9명은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인들은 대부분이 직불카드(debit card)나 현금으로 결제하고 있었다. 30여 분간 계산대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사람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금융 선진국 영국은 우리나라의 체크카드(check card)처럼 카드를 긁는 즉시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직불카드가 대표적인 결제수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영국카드협회(UK Cards Association)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영국에서 발급된 카드는 총 1억6400만장으로 인구 1인당 약 3.80장의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직불카드로 카드 대출이 가능한 신용카드는 1인당 0.88장에 불과하다. 평균 5장에 달하는 신용카드를 지갑에 넣고 다니며 당장 돈이 없어도 할부로 물건을 구입하고 다양한 할인 혜택을 받는 우리나라 소비문화와 크게 다른 모습이다.
단지 영국인들은 우리나라 국민보다 통장 잔액이 많기 때문에 직불카드 사용이 많은 것일까?
| 리차드 코츠 영국카드협회 부사장이 영국의 카드시장에 대해 설명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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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코츠 영국카드협회 부사장은 “영국 정부가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직불카드 활성화에 나서면서 영국인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2006년 영국 금융감독청(Financial Service Authority:FSA)은 신용카드 사용 후 빚을 잘 상환하지 못하는 사회 문제가 불거지자 직불카드를 적극 권장하기 시작했다. 직불카드는 결제계좌에 잔고가 있어야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소비와 신용불량자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이점이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펼치고 있는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과 같은 맥락으로 영국은 이미 7~8년 전에 이와 같은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소득공제 혜택 확대를 체크카드 활성화 당근책으로 제시한 것처럼 영국도 직불카드 결제 시 각종 수수료와 이자율 할인 등 서비스를 늘렸다.
리차드 부사장은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총 구매가격의 일정 비율을 가산 청구하는 서차지(surcharge)를 부과하지만 체크카드는 이를 할인 또는 면제해 줬다”며 “대출이 필요하면 카드론을 이용할 때보다 훨씬 낮은 이자로 마이너스 통장을 쓸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영국 소비자들의 카드 결제 가운데 직불카드 사용은 74%까지 늘어난 반면 신용카드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영국 은행들은 카드 사용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가 직불카드 결제 문화를 빠르게 정착시켰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한 대형은행 고위 관계자는 “영국 국민 사이에 ‘신용카드는 빚이다’라는 인식이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카드를 이용해 돈을 빌리는 잘못된 습관이 크게 줄었다”며 “당국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 보다 자율경쟁을 통해 더 나은 직불카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