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부지 쟁탈전…'정중동' 삼성 '총력전' 현대차 승자는?

by이재호 기자
2014.08.31 17:03:50

[이데일리 이재호 김형욱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인수하기 위한 삼성과 현대차(005380)의 10조 원 규모 ‘전(錢)의 전쟁’이 막을 올렸다.

경쟁에 임하는 두 기업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삼성은 합리적인 가격이라면 인수를 검토할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한편 그룹 차원의 전담조직을 꾸리는 등 ‘정중동(靜中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총력전 태세다. 초반부터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밝혀 삼성 등 잠재적 경쟁자들의 사기를 꺾기 위한 의도다.

특히 이번 인수전은 지난 2001년 현대그룹이 사실상 해체된 이후 처음으로 ‘삼성’과 ‘현대’라는 간판을 내걸고 치러지는 라이벌전이라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룹 핵심부는 물론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계열 건설사 등이 상대방 및 발주처 동향 파악에 안테나를 높게 세우고 있는 배경이다.

◇ 마지막 노른자위 땅…천문학적 개발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 부지 매각 입찰이 지난 29일부터 시작됐다. 가장 많은 금액을 써낸 곳이 인수하는 경쟁입찰 방식이다.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평가되는 한전 부지의 새 주인은 오는 18일 결정된다. 한전이 제시한 본사 부지(면적 7만9342㎡)의 감정가는 3조3346억 원이다. 그러나 부동산 업계에서는 입찰가가 4조~5조 원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서울시 기부채납 40%(약 1조3000억 원), 건설비 3조 원, 금융비용 및 취·등록세 등 부대비용 2조 원 등을 더하면 개발비용이 10조 원을 훌쩍 넘을 가능성이 높다.

인수 주체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과 현대차가 거론되는 이유다. 두 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각각 66조 원과 43조 원 수준이다.

◇ 현대차, 인수 후 랜드마크로 육성

현대차는 한전이 입찰 공고를 발표한 직후 “인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는 등 그룹 차원의 총동원령을 내렸다.

실제로 현재 서울 양재동 사옥을 대체할 새 사옥을 짓기 위한 부지 확보가 절실하다. 현대차는 서울에만 30개 계열사의 1만8000명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양재동 사옥에 입주해 있는 곳은 5개사 5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8년 전부터 서울 성수동 뚝섬에 사옥을 짓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서울시가 도심 외 지역의 초고층 빌딩 건립을 제한하면서 올해 초 이 계획이 완전히 무산됐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한전 부지 인수가 마지막 선택지가 된 셈이다. 현대차는 이 지역을 랜드마크로 육성해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명분론까지 내세우고 있다.현대차 관계자는 “지난해 계열사들이 개최한 해외 행사에 참석한 인원은 7만~8만 명에 달한다”며 “한전 부지를 인수해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를 만들면 행사의 상당 부분을 국내에서 치를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2020년 기준 10만 명의 행사 관계자를 유치하면 최소 1조3000억 원이 국내로 유입된다는 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유럽 최대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이 독일 본사 ‘아우토슈타트’는 매년 250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 삼성 “관심은 있지만”…과열 경쟁 지양

현대차와 달리 삼성은 가격과 효용성 등을 감안해 인수전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아직 입찰에 참여할 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부지 위치나 규모 등을 감안하면 활용 방안은 다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은 전자 계열사를 서초사옥으로 모으고, 금융 계열사는 태평로 인근에 집결시키는 방식으로 ‘삼성 타운’ 조성을 마친 상태다. 새 사옥을 짓기 위해서라면 굳이 한전 부지를 인수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해당 부지가 강남의 중심지에 위치한 데다, 다양한 형태로 개발할 수 있어 관심 자체를 접은 것은 아니다. 삼성물산은 지난 2009년 한전본사 일대를 복합상업단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다만 삼성전자(005930)의 실적 부진이 걸림돌이다. 삼성이 한전 부지 인수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의 막강한 자금력을 활용해야 한지만, 현재 삼성전자는 마른 수건까지 쥐어짤 정도로 긴축 경영을 하고 있다.

인수전이 현대차와의 ‘2파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눈치다.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밝혔다가 자칫 실패할 경우 라이벌전에서 진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전은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 삼성과 현대차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며 “현대차가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삼성도 물밑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