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입제도서 배운다)①대전제는 `자율`…절대기준은 없다
by김기성 기자
2008.02.13 11:50:00
기획특집 `美대입제도서 배운다` 시리즈 연재
`대학 명성 빛낼 인재` 선발이 `궁극적 목표`
입학처, 전문성+노하우 `신뢰의 바탕`
[뉴욕=이데일리 김기성특파원] 오는 25일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꼽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책중 하나는 교육개혁이다. 정부 주도의 천편일률적인 교육제도를 민간과 지방자치단체로 대폭 이양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주입식이 아닌, 능동적·자율적 인재육성을 모토로 하고있다.
기대감도 크지만 우려감도 적지 않다. `교육의 자율권`이라는 원론에는 수긍하지만, 시행과정에서 발생할 부작용과 혼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edaily는 `자율`이라는 대전제 아래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들을 키워낸 미국의 대학입학제도의 장단점을 통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대전제는 `자율`…절대기준은 없다
②유일한 목표 `사회기여형 인재를 찾는다`
③자율의 사생아 `자본주의式 카스트제`
④"성적은 기본…다양한 활동경력이 더 중요"
⑤"한국, 사교육 경감에 목표두면 `실패`"
⑥"자율화, 한국서는 아직 이르다"
⑦예일대 합격생이 바라본 美대입제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Upper West) 지역에 위치한 아이비리그 명문 컬럼비아대학. 그 곳을 찾은 지난 4일(현지시간)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겨울철의 여느 대학 캠퍼스 처럼 다소 적막한 분위기 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틀 전 신입생 정기전형을 마감한 컬럼비아대학의 입학처는 사정이 달랐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몰려든 지원자들의 서류를 면밀히 평가해 4월 첫째주까지 합격자를 가려내야하는 눈코뜰새없는 시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홍보담당자인 존 터커는 "다양한 잣대를 갖고 컬럼비아대학이 전통적으로 원하고 있는 인재를 뽑아야하는 입학처로선 일년중 가장 바쁜 시기다"고 말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내로라하는 다른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들도 일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매년 이맘때 치러지는 아이비리그의 신입생 선발시즌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선발기준의 답은 없다`..대학마다 천차만별그렇다면 아이비리그 명문대학들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할까. 학생들은 꿈에 그리던 아이비리거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해왔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딱 떨어지는 정형화된 답`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 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을 만점받았다고 어떤 대학이나 합격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SAT 성적이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오산이다. 뛰어난 학업성적은 기본이다. 여기에 성실성, 사회성, 인간성, 가정 및 교육여건 등 계량화하기 힘든 다양한 질적 요인들이 엄격하게 반영되면서 당락이 결정되는 구조다.
게다가 평가 요인 및 비중은 대학별 인재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수능시험성적과 내신을 가지고 무자르듯 당락을 결정짓는 단선적인 우리네 사고방식으론 오히려 혼란스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미국 대학들이 신입생 선발에 있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공통된 목표는 일치한다.
`대학의 명성을 빛내고,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분명한 관점이다. 수능성적과 내신성적 만으로 신입생을 기계적으로 선발할 수 밖에 없는 우리와는 출발점부터 다른 것이다.
◇자율로부터의 `출발`..`자체 기준으로 우수 학생을 뽑을 뿐이다`미국 대학입학제도의 대전제는 `자율`이다. 한국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한국 처럼 3불(기여입학제, 본고사, 고교등급제 금지)정책이니 수능과 내신을 몇%씩 반영하라는 식의 시시콜콜하고 획일적인 교육당국의 지침은 없다. 미국의 대학별 입학기준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학이 그동안 축적해 놓은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방침에 따라 우수 학생을 뽑으면 그만인 것이다.
실제로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NYU(뉴욕대학) 등을 상대로 `신입생 선발의 객관적 기준`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요청했으나 "너무 복잡해서 설명하기 힘들다"는 답변 뿐이었다.
구체적인 기준 공개 자체를 철저한 기밀에 부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기준들이 다양한 상황에 따라 적용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질문 자체가 우문이었던 셈이다.
예일대학 입학처장인 제프리 브렌젤은 "학생 선발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원자들이 결과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학의 존 터커는 "아마 그 질문에 대해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대학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물음에 대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나 자율이 보장된 미국 대학입학제도의 맹점도 만만찮다. `레가시`(동문자녀 우대 정책)로 대표되는 철저한 자본주의식 교육제도가 `인종간 계층간 교육 불평등` 등 사회적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미국 사회의 고질병인 `부익부 빈익빈`이 교육제도를 통해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신뢰성의 근간..`입학처 전문성과 노하우` 비계량화된 요인들을 중요시하다 보면 입학사정관의 주관이 과도하게 들어가는 게 아닐까. 미국내에서도 이같은 문제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약한 수준이다. 대학 입학처의 전문성과 노하우에 대한 신뢰성이 이미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입학처는 20~30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입학처장들은 이 분야에서 수십년동안 잔뼈가 굵은 최고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일년내내 우수 학생을 선발한다는 일념 아래 전국 각지의 고등학교를 방문, 각 학교의 수준을 파악하고 입학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외국에 우수 학생이 있다면 해외 출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 ▲ 월스트리트 근처 맨해튼 남부에 위치한 N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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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학에 따르면 입학처 관계자들은 지난해 5개 대륙과 미국 45개주의 고등학교를 찾았다. 지난해 가을에만 30개 도시에서 입학 카운셀러와 오찬을 가졌다.
이같은 입학처 관계자의 활동은 합리적이면서도 엄격한 입학사정의 바탕이 되는 풍부한 정보 데이타를 쌓기 위한 것이다. 내신과 SAT 등 계량화된 점수를 기본으로 질적인 요인을 평가하기 위해선 고등학교 수준은 어떤지, 그 지역의 가정 환경은 일반적으로 어떤지 등 매우 세밀한 부분의 현황까지 꿰차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지원자가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대학입학사정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외계층의 학생이 동부 명문 사립고 출신의 학생 보다 SAT 점수가 다소 낮더라도 가산점을 더 받는다. 어려운 환경을 고려하는 것이다. 성적이 갑자기 떨어진 경우가 있다면 그 때 가정적으로 무슨 일이 없었는지 등 세세한 부문까지 입학사정에 반영한다. 평균적으로 학업 성적이 높은 고교에서 받은 B등급은 고교 수준이 낮은 학교의 A등급보다 낮다고 보지 않는다.
동문들도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하버드대는 동문중 지역별 자원자를 선발해 신입생과의 인터뷰를 정례화하고 있고, 예일대는 재학생의 신입생 인터뷰를 비중있게 반영하는 식이다. 우리의 사고로는 이같은 인터뷰가 객관적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대학의 동문 인터뷰는 입학사정의 중요한 툴로 정착돼 있다. 학교측은 동문이야 말로 최고의 능력과 지성을 가졌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동문들은 학교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만큼 `대학의 명성에 걸맞는 최고의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조석희 세인트 존스대학 교수는 "미국은 신입생 선발을 위한 풍부한 데이터베이스와 입학사정을 위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어 신뢰성이 유지되고 있다"며 "한국도 이같은 요건들을 대학들이 빠른 시일내 갖출 수 있느냐가 새 정책 성공 여부의 관건중 하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