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더 미뤄지면 연초 집행 불가능…경제·복지정책 개점휴업 위기

by이명철 기자
2022.12.04 22:00:11

[예산 지각처리 후폭풍]
정부가 확정된 예산안 전달한 후
지자체서 지방비 매칭 시간 필요
민간 투자 활성화 지원 정책부터
저소득층 의료 서비스까지 차질
"조속 합의로 정기 국회내 통과를"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원다연 기자] 여야 정쟁으로 국정 운영 동력이 될 새 정부 첫 예산안의 시한 내 처리가 끝내 무산된 가운데 예산안 처리가 더 이상 지연되면 당장 내년 초부터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 위기는 가시화하고 있는데, 민간 주도 경제 성장을 독려하기 위한 정부의 국정과제, 민간 지원은 물론 기초연금·주거급여 등 굵직한 복지사업들도 연초부터 줄줄이 ‘개점휴업’ 상태에 놓여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4일 국회에 따르면 헌법에서 규정한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은 새해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예산안이 실제 집행과는 한 달 가량의 시차가 있지만, 예산안이 국회에서 확정된 후에도 여러 행정 절차가 남아있다는 점을 감안해 잡은 시한이다.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국무회의에 ‘2023년 예산의 공고안 및 배정계획’을 상정해 의결 절차를 밟는다. 국무회의 통과 후에는 각 부처별로 확정된 예산 집행 준비에 착수한다. 예산안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이상의 예산이 증액 또는 감액될 수 있고, 아예 사라졌던 사업이 다시 등장하는 등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비와 매칭해야 하는 국고 보조 사업의 경우 지자체의 대응이 필수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지방 국고보조사업 규모는 총 120조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지방비를 통해 38조원 가량을 매칭을 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국고 보조에 대응할 지방비를 확보하려면 보통 예산 확정 후 지자체에 사업 규모를 전달해 지자체에서 지방 의회를 열어 대응하는 지방비를 확보하기 위한 추경 등 작업을 해야 한다”며 “그래야 1월 1일부터 집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예산안에서 당초 전액 삭감했던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사업이 대표적이다. 여야는 지역화폐에 대한 예산을 5000억원으로 합의한 바 있다. 각 지자체가 발행하는 지역화폐에 대해 정부가 일정액을 보조하는 것이다.

예산안에서 지역화폐 사업이 확정되면 정부가 이 사실을 각 지자체에 알리게 된다. 만약 경기도라면 정부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달받은 후 각 시·군에 알리면 대응 지방비를 편성하는 순서를 진행해야 한다. 예산안 확정이 늦어질수록 중앙정부에서 기초지자체까지 전달되는 시점이 지체돼 결국 새해에 시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화폐의 국고 보조를 염두에 두고 미리 예산을 편성할 수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시정 연설은 압수수색에 반발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아 절반 이상 의석이 비어있는 상태로 진행됐다. (사진=연합뉴스)
지역화폐만의 문제가 아니다. 120조원이나 되는 국고 보조 사업에는 다양한 복지 예산이 편성돼있어 지급 일정이 늦어질 경우 서민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정부 예산안이 18조5300억원 규모다.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중 일정 소득 기준 이하에게 지급한다. 해당 사업을 위해선 지방비가 4조1100억원을 매칭해야 한다.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급여의 정부 예산안은 9조9800억원으로 대응해야 할 지방비는 2조9200억원 수준이다. 주거가 불안정한 저소득층에게 임차료를 지원하는 주거급여의 경우 정부 예산안 2조5700억원, 매칭 지방비 5400억원이다.

만 8세 미만까지 양육하는 가정에 지급하는 아동수당과 만 0~1세 양육자를 지원하는 부모급여는 정부 예산안이 각각 2조2600억원, 1조6200억원 편성됐다. 이들 사업 역시 지방비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각각 7300억원씩 지방비 매칭이 예고됐다.

민간 중심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민간 지원 사업들도 예산안 처리 시점에 민감하다. 통상적으로 민간 공모사업의 경우 예산안이 실제 집행되기 이전인 1월 1일 이전에도 사업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민간 투자를 서둘러 유치하려는 차원에서 예산안 확정후 선제적으로 사업자 공모를 하고, 이듬해 곧바로 예산을 집행한다.

예산안에 편성된 민간 이전 예산은 20조4100억원이다. 민간 경상보조가 9조4300억원으로 가장 많고, 민간 위탁 사업비(3조6800억원), 민간 자본보조(2조9400억원) 순이다. 정부가 보조하는 주요 사업으로는 △중견기업 해외 마케팅·수출 지원(4816억원) △전략물자 수출입 통제 기반 구축(851억원) △지속 가능한 뿌리산업 육성(194억원) △농식품 분야 창업 성장 지원(142억원) 등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은 이미 법정 기한이 지나 임시회로 넘어가기 전 정기국회 내 통과 여부가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며 “조속한 합의를 위해 증액 심의 등 국회 협조를 지속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