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추모, 비난과 조롱`…극단적 반응 폭발한 박원순의 마지막길

by정병묵 기자
2020.07.12 18:07:11

“애도” “조롱” 조문객 사이서도 극단적 다른 반응
“서울특별시葬 반대”…집행금지 가처분 신청 제기
정치권은 '조문 정국'…시민사회계서도 의견 분분

[이데일리 정병묵 이용성 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은 그 급작스러움 때문에 전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하지만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의 사망을 둘러싼 극단적인 의견 대립이 고개를 들었다.

분향소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오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나는 음악을 틀며 추모를 조롱하고 방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야권뿐만 아니라 박 시장이 발 디딘 범민주·시민사회계에서도 성추문 의혹을 두고 고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시민운동가 출신 지방자치단체장이자 유력 대권주자의 사망을 두고 벌어진 풍경은 한국 사회의 국론 분열이 얼마나 극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에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10일 서울시가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5일장으로 진행한다고 밝히자 바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12일 현재 53만명이 참여했다. 심지어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10일 서울행정법원에 서울시장 권한대행인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상대로 ‘서울특별시장 집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시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고인의 성추행 의혹을 겨냥, 서 권한대행 등을 업무상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방조죄로 경찰 고발했다.

정치권에서는 ‘조문 정국’이 펼쳐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인 추모가 우선이라며 수많은 의원들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은 반면 미래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지도부들이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시장과 단일화한 뒤 지지를 선언한 남다른 인연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별도의 조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의 초선 장혜영·류호정 의원은 각각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애도할 수 없다”, “(박 시장을 고소한 A씨에 대해)당신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다”면서 조문을 거부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반응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11~12일 이틀 내내 ‘통곡·눈물’과 ‘조롱·비난’이 교차했다. 상당수 조문객들은 눈가를 훔치거나 한동안 분향소 쪽을 바라보는 등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시청 정문은 시민들이 직접 가져온 꽃과 고인을 추모하는 쪽지로 장식됐다. 쪽지에는 ‘황망히 가시니 더욱 더 그립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12일 분향소를 찾은 임모(60)씨는 “서울시민은 아니지만, 서민을 먼저 챙기고 항상 겸손한 모습 때문에 고인을 좋아했다”며 “더 좋은 일 하실 게 많은 분인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각종 보수단체들은 ‘서울특별시장(葬)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거나 분향소 근처에서 ‘댄스 음악’을 틀면서 조문을 방해해 경찰 제지를 받기도 했다. 박 시장을 추모하는 시민들은 “굳이 장례식장에서 와서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뭐냐”라며 보수단체와 서로 충돌했다. 일부 보수 유튜버들의 조롱도 장례 기간 내내 계속됐다. 가세연은 10일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현장 근처인 종로구 와룡공원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고인의 사망을 두고 “이런 지형에서 목을 매기가 쉬울까”, “넥타이라면 에르메스 넥타이를 매셨겠네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11일에는 빈소 근처에서도 생방송을 진행했다. 박 시장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자명예 훼손을 넘어 국가원수까지 모독한 유튜브 생방송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12일 오후 서울시청앞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에 조문객들과 시위를 하는 일부 시민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박 시장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시민사회계에서도 이러한 반응은 이어졌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고인은 시민운동 개척한 활동가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하지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몇몇 여성단체는 “박 시장은 과거를 기억하고, 말하기와 듣기에 동참하여, 진실에 직면하고 잘못을 바로 잡는 길에 무수히 참여해왔다”면서도 “그러나 본인은 그 길을 닫는 선택을 했다”라고 비판했다.

박 시장 장례위원회 측도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당초 13일 서울광장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노제(路祭)를 취소하고 온라인 영결식을 열기로 했다. 박홍근 의원은 12일 “코로나19 방역 협조를 위해 영결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밝혔지만 성추문을 둘러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 시장은 13일 영결식 후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 화장을 거쳐 경남 창녕 고향 묘소에 묻힌다. 유족 뜻에 따라 묘소는 얕고 살짝 땅 위로 솟은 봉분 형태로 마련된다. 12일 오후 기준 시청 앞 분향소에는 1만6000여명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7000여명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