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절감정책 또 변경.."애초 무리했다"

by천승현 기자
2010.08.16 11:35:26

복지부, 일반약 비급여 전환 1년연기
"다른 사업과 연계, 효율성 제고"..업계·시민단체 "무리한 정책추진때문"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최근 약가인하 정책을 전면수정했던 정부가 이번에는 건강보험재정절감을 목표로 추진중이던 일반의약품 비급여 전환 사업 일정을 1년 연기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업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건강보험 재정절감 정책을 추진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정부가 기대했던 재정절감 효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일반의약품 보험급여 타당성 평가 일정을 당초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하반기까지 변경한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이 사업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일반약 1880개의 임상적 유용성 등을 검토, 임상적 근거가 미약하거나 대체약제보다 비용효과성이 낮은 의약품을 보험목록에서 삭제하는 내용이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일반약 개수를 축소함으로써 재정절감을 꾀하겠다는 의도다.

당초 복지부는 해당 의약품의 임상자료 등을 검토한 후 올해 하반기까지 최종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순환기계용약 등 5개 효능군은 내년 상반기, 나머지 41개 효능군은 내년 하반기 고시하기로 추진일정을 1년 정도 연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등재 의약품 목록정비 방안의 변경으로 기등재 의약품의 신속한 정비가 가능해졌다"면서 "전문약까지 포괄하는 평가과정을 거쳐 고가의약품으로의 처방전환 가능성 등의 부작용을 고려하기 위해 추진일정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과 일반약 비급여 전환 대상과 일부 중복되는 제품이 있는 만큼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재정절감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달 복지부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의약품 전체의 약가를 재평가하는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을 과거에 등재된 고가의 약만 가격을 인하키로 약가인하 정책을 대폭 수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약가인하 대상 및 인하폭은 크게 줄었지만 약가인하 시기는 앞당겨지기게 됐다. 추진 대상 및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일반약 비급여 전환 사업도 기등재 목록정비 사업과 동시에 추진하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복지부의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연이은 건강보험 재정절감 정책의 변경은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인한 불가피한 후퇴라는 지적이다.



일반약 비급여 전환의 경우 정부는 보험적용을 받는 일반약의 상당수를 비급여로 전환시킨다면 건강보험 재정절감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값싼 의약품이 비급여로 전환되거나 비급여 전환 제품의 대체약물이 고가약으로 바뀔 경우 보험재정에 더 부담될뿐더러 환자의 보장성도 줄어든다는 이유로 제약업계와 시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대해왔다.

정부는 다른 약가인하 정책과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합리적인 결과를 내놓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같은 부작용이 예상됨에 따라 `신중론`으로 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추진 방향을 대폭 바꾼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도 추진과정에서 의료계 등으로부터 실효성 논란에 불거지자 추진 방향이 대폭 수정된 바 있다.

2년전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본 평가에 착수한 고혈압약 평가의 경우 약가인하 원칙이 공개되자 의료계에서는 "실제 처방 현장을 무시하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약물을 평가한다"며 강하게 반대하자 결국 정부는 당초 입장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약가인하 대상 및 약가인하 폭도 예상보다 줄어들게 되자 시민단체들이 "사실상 약가인하 정책의 백지화"라고 규정하며 철회를 촉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두 가지 건보재정 절감 정책의 변경으로 재정 절감 효과도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신형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실장은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의 백지화는 정부의 약가인하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일반약 비급여 전환 일정 변경은 애초에 재정절감 효과가 없는 정책을 추진하다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 정책실장은 "정부가 재정절감에만 초점을 맞추고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추진 방향 및 일정도 변경되면서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비판했다.
 
한편 제약사들은 자사 의약품의 약가 인하를 모면할 뿐만 아니라 일반약의 비급여 전환 시기가 연기됐기 때문에 환영하는 입장이다.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이 당초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대웅제약(069620)의 `올메텍`, 동아제약(000640)의 `스티렌` 등 상당수 주력제품은 약가인하가 불가피했지만 사실상 약가인하를 피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