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좌동욱 기자
2009.04.22 11:24:51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한나라당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위한 법 개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한편의 `코미디`가 따로 없다.
당·정은 지난 15일 가맹점이 1만원 미만 소액 상품에 대해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현금과 신용카드 결제 금액간 차이를 둘 수 있도록 하며, 카드 수수료 상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 개편안에 합의했다.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6일 이런 당·정 합의안을 담은 법안을 의원 입법 형태로 국회에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불과 나흘 후인 20일 김 의원은 국회에 낸 법안을 스스로 철회하고 새로운 법안을 냈다. 새로 제출된 법안에는 현금과 신용카드 결제 금액간 차이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 삭제됐다.
김 의원측 관계자는 "당·정 협의 과정에서 최종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 삽입됐다"며 "법안을 제출한 것은 실무자의 실수"라고 말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검토는 했으나 확정되지 않는 부분이 법안에 들어갔다"며 "`실수`라기 보다는 `착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당과 정부의 이런 해명을 액면 그대로 믿어줄 국민은 많지 않다.
실제 금융감독당국 내부에서조차 제도 개편안이 여론의 역풍 때문에 도입하기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결국 `카드 수수료를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비판때문이다. 관련기사 참조 ☞ 4월16일 오전9시30분 (단독)당·정, 카드수수료 상한제 도입 합의
이는 `실수`나 `착오`라는 해명과 달리 금융감독당국 내부에서 제도개편에 따른 검토가 충분히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당과 정부의 해명을 그대로 믿어준다고 해도 국민들은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다.
신용카드를 쓰는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을 대충대충 처리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기준 국내 발급된 신용카드 수는 8957만장. 15세 이상 경제활동 인구 2400여만명이 평균 3.7장씩 들고 다닐 정도로 흔하다.
특히 이 문제는 소비자들 뿐 아니라 국내 150만곳 이상의 신용카드 가맹점과 국내 신용카드 회사의 수익에까지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다.
당초 국내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를 손보겠다고 나선 곳이 금융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쓴웃음`마저 나온다.
금융위는 지난 1월22일 개최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금융위는 당시 이 대통령에게 2월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일정까지 못박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도록 금융위는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지 않았다. 당·정이 합의한 제도 개편안은 의원 입법 형식으로 국회에 발의됐다. 통상 법을 바꿀 때 정부 입법보다 의원 입법 방식이 여론의 주목을 덜 받는다는 사실을 노린 `꼼수`라는 지적이다.
금융위는 심지어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후에도 제도 개편이 소비자나 신용카드사에 미칠 영향이나 문제점 등을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금융위는 이 대통령에게 거짓 보고를 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신용카드 수수료 시스템 개편 논의는 국내에서만 10년 이상 끌어온 민감한 이슈다. 제도를 바꿀 경우 이해 당사자인 소비자, 가맹점, 신용카드사 중 하나가 반드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제로섬` 구조이기 때문에 제도 개선안을 쉽사리 도출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한나라당과 정부의 행태를 보고 화를 내지 않을 국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