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FX칼럼)적정 엔/원 환율...새로운 화두

by이진우 기자
2001.12.17 14:41:15

[edaily] 지난 주간 관찰된 달러/엔 환율의 움직임은 확실히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이미 시장의 관심을 끌었던 레벨인 125엔이 돌파된 상태에서 지난 4월 초에 기록한 연중 고점(127엔 직전)을 주말 동경시장에서 올라서고 월요일 아침부터 128엔대 진입조차 시도 할 정도로 엔화의 약세가 급한 물살을 타는 모습입니다. 외국인들의 직간접 투자자금 유입으로 인해 지난 10월4일 이후 강세를 보여 오던 원화도 1년 남짓만에 다시 국제금융시장의 이슈로 떠오른 엔화약세라는 복병으로 인해 그 방향성이 애매해졌습니다. "엔화는 우리 원화보다 10배 이상 비싼 통화이다."라는 관념이 97년 외환위기 이후 상식으로 굳어지다 보니 엔화의 급락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원화환율로 인해 100엔당 1000원 아래로 흘러내릴 가능성이 없지 않은 엔/원 환율 때문에 시장도 정책당국도 고민에 봉착하는 듯한 시기입니다. 그 고민이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보고 갈까요? ◇엔화의 약세기조는 인정해야 할 것 같으나... 1992년부터 침체의 조짐을 보이던 일본 경제가 지난 10년의 세월을 허송세월 한 결과가 오늘날 "일본發 세계금융위기說"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은 지극히 東洋的(?)이다. 상당히 애매모호한 개념이지만, 필자가 동양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서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효율성과 철저한 수익/비용 분석(Cost/Benefit Analysis)에 따른 의사결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본 관료들과 기업들의 관행 및 오랜 버릇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들도 과감한 외과적인 수술은 겁내고 근본적인 해결책의 모색보다는 미봉책에 매달리며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 온 경향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작금의 엔화 급락세만 하더라도 그렇다. 재정적자, 제로나 다름없는 저금리 정책 등 별의별 정책수단을 동원해도 침체된 일본 경기가 회복세를 보일 기미가 없는 가운데에 부실이 점차 가중되어 온 금융기관들과 일부 기업체들의 도산이 눈 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일본 정부는 또 다시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확대라는 다소 이기적이고 나이브(naive)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오카와 재무장관, 구로다 재무관, 하야미 일본은행(BOJ) 총재 등 현직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금은 게이오 大學의 교수로 재직 중인 왕년의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에 이르기까지 연일 달러/엔 환율이 지금보다 더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에 (하야미 총재는 그 와중에 조금은 엔화의 급락을 우려하는 듯한 입장이다. 중앙은행의 총재로서 엔화급락에 따른 물가불안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도 엔화약세를 미국이 수용할 것이라는 둥 바람몰이에 나서는 분위기다. 연말을 맞아 극도로 얇아진 시장에서 일단 달러/엔은 전고점(127엔)이 돌파된 상황이라 기술적으로 추가상승의 걸림돌은 당장에 없어 보인다. 시간문제일 뿐 130엔이나 140엔을 가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금년 3~4월 달러/엔 환율의 130엔 돌파 가능성이 강하게 대두되었던 시점에 주변국가들이 느꼈던 위기감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 필자가 느끼기로는 마냥 올라가기만 하는 달러/엔 환율에 대해 한국, 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이 공포감을 느꼈고, 심지어 미국이나 일본마저도 달러/엔의 그 당시 급등세를 브레이크가 파열된 화물차의 질주처럼 불안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지금도 어렵사리 미국 증시에서부터 시작된 "경기침체로부터의 탈출시도"에 달러/엔 환율의 급등세라는 변수가 찬 물을 끼얹는다면 그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부상할 수 있는 시점이다. 시오카와 재무상의 너무 급격한(too rapid) 엔화약세를 우려하는 듯한 발언이 월요일 아침에 보도되기도 하였는데, 시장이 정녕 "흥분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계속 달러/엔 상승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할 것인지는 며칠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 라 생각된다. ◇원화의 경우 작년과는 사정이 다르다 무너지는 국내외 증시, 이런저런 대기업들의 자금난 소식, 이리저리 둘러 봐서 이건 그래도 희망적이다 할 만한 뉴스가 없던 시절의 달러/엔 급등세와 지금의 달러/엔 급등세는 확실히 그 파워가 다르다. 달러/엔만이 유일한 환율결정 변수라면 엔화환율이 연중 고점을 돌파한 이 시점에 우리 원화환율이 연중 고점(4월 4일의 1365.30원)에서 70원 넘게 떨어진 시점에서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일국의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로서의 환율이라는 것이 단순한 사칙연산만으로 도출해 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다. 작년과 올해 초에 비해 확실히 개선된 주변여건들과 실제 서울의 외환시장에 유입되는 달러 실수요와 공급물량간의 힘겨루기 등이 외환시장참여자들의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는 이 시점에(신용평가회사들의 움직임이 그러하다. 월요일만 하더라도 무디스(Moody"s)가 조흥, 한빛, 외환, 하나은행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기업체들의 네고물량이 씨가 말랐던 작년과는 달리 레벨마다 대기 중인 달러공급물량이 달러/원의 급등을 말리고 있으며, 증시로 유입되는 외국인들의 간접투자자금이나 그들의 직접투자자금 등의 달러공급요인 또한 작년과는 다른 의미와 무게로 시장에 다가오고 있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일본이 저렇게 자기들만 살겠다고 극약처방을 쓰는 시점에 우리 서울의 외환시장도 어느 정도 자기방어적인 측면에서의 원화절하를 용인할 수는 있으나 미국을 비롯한 국내외 증시가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국면을 마무리하고 다시 상승랠리를 이어 가면서 외국인들의 국내투자에도 힘이 붙으면 달러/원 환율은 달러/엔을 따라가되 아주 느슨하게, 심하면 따로 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어느 쪽이든 결정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지금 당장은 달러/엔의 향후 추이와 당국의 대응이 제일 큰 변수로 떠 올랐다. 월요일 오전 장에서도 엔/원 환율은 1010원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1997년도의 환란(換亂) 이후 훌쩍 올라선 100엔당 1000원이라는 레벨이 심리적으로 강하게 작용하는 시점이다. 세계 시장에서 많은 분야에서 일본과 부딪히며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일본만큼이나 아직도 추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때 자본수지상의 달러흑자라는 요인만으로 엔/원이 1000원 아래로 내려가고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수출기업들이 세계 각처에서 힘든 싸움을 펼쳐야 한다는 점이 억울하다. 그래서 우선은 달러/엔의 추이를 쫓아가는 것이 급선무다. 오늘 밤에라도 128엔을 뚫고 올라서고 며칠 내로 130엔대 마저 딛고 올라서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앞뒤 가릴 것 없이 달러는 좀 사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달러/엔을 쫓아가긴 하되 조심스러울 밖에 없는 이유 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시장은 이미 롱(Long)으로 돌아선 듯 하다. 달러/엔 시장에서도 달러/원 시장에서도 지금 급히 팔아야 할 매물을 내다 파는 것 이외에 투기적 거래로 달러매도에 나설 세력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양쪽 다 갑자기 최근의 흐름이 꺾일 변수가 돌출한다면 단가가 좋지 않은 롱포지션을 들고 있는 세력들은 고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둘째, 시장이 일방으로 몰릴 때가 의외로 위험하다. 작년 말과 금년 초의 환율 급등세는 대다수 참여자들이 어어하는 사이에 황망하게 이루어진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엔화는 약세로 가야하고 원화도 그에 따라 나홀로 강세를 고집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모두의 동의가 이루어짐으로써 강력한 추세가 형성되는 것이 시장이긴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몰려다님"이 뜻하지 않은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셋째, 증시가 지금 큰 폭의 조정(?)을 보이고 있는 중이지만 미련은 남아있다. 뉴욕 증시가 어디까지 물러서며 어디에서 다시 강한 상승 랠리를 재개할 것인가가 관건이긴 하지만 깡통도 차 보고 증시에서 산전수전 다 겼어 보았다는 사람들 중에 내년 1분기 중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제법 접할 수 있다. 일단 스타트 라인을 출발한 달러/엔이나 달러/원 환율이 진정세를 보이려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레벨인 130엔이나 1,300원을 한 번 보긴 보아야 할 것 같다.(그렇게 되면 계산기 없이도 엔/원 환율을 산출해 내는 시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130엔에서 1300원의 균형이 맞아 든다면 131엔은 1310원, 129엔은 1290원 이런 식으로...) 그러나 그 이상으로의 상승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퀘스쳔 마크이다. 오늘 칼럼은 숏마인드 강한 "딜러"의 딴지걸기가 아니라 달러/엔 환율만을 쫓기에는 뭔가 찝찝한 "시장 관찰자"의 단상(斷想)이라고 보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