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대출 끊으면 어쩌나"‥벼랑끝 내몰린 서민(종합)

by장순원 기자
2020.12.27 15:45:51

코로나 틈타 가계대출 늘렸다가 대출중단
금융당국 "당분간 총량규제 지속하겠다"
돈 급한 서민들 고금리 대출로 내몰려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3000만원이 급히 필요해서 신용대출을 알아봤는데 주거래은행에서 대출 불가통보를 받았습니다. 저축은행은 이자가 훨씬 비싼데 은행에서는 돈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보험을 깨서 돈을 마련해야 하나 싶습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을 포함한 국내 대형은행이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대출 문을 걸어잠그자 서민과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비자들이 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으로 내몰리는 처지가 됐다. 금융당국이 당분간 총량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어서 내년까지 ‘대출절벽’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최대 가계대출 취급은행인 KB국민은행은 지난 22일부터 2000만원 이상 신용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연말까지 아예 신용대출을 내주지 않기로 했고, 하나은행도 주력인 모바일 ‘하나원큐 신용대출’ 판매를 중단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17일부터 직장인 대상 신규 ‘마이너스통장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고소득자 위주의 대출규제 범위를 서민층까지 대폭 확대한 것이다.

은행권이 대출 급브레이크를 건 것은 극약처방 없이 금융당국과 약속한 신용대출 증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을 빡빡하게 관리해오다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규제를 느슨하게 풀어줬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대출을 확대해 경기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은행권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대출 대신 가계 신용대출을 늘리는 쪽으로 영업 드라이브를 걸었다. 고신용자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을 늘리면, 돈을 떼일 위험은 적은 대신 수익은 늘릴 수 있다.



실제 리딩뱅크 경쟁을 벌이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올 들어 11월까지 가계 신용대출이 각각 22.1%, 22.6% 증가했다. 은행권 가운데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두 은행은 3분기까지 1조7000억~1조80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은행권의 이런 전략은 주택과 주식투자용 자금 수요가 가세하면서 가계대출이 통제권을 벗어나면서 스텝이 꼬였다. 금융당국이 지난 10월부터 연말까지 은행권의 월간 신용대출을 2조원대로 관리하겠다는 총량규제 방침을 밝힌 지난 11월에도 국내 5대 은행 신용대출은 5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서민들의 돈줄을 죄지 않으려 고소득자 위주로 대출을 막으려 했으나 웬만한 규제로는 약발이 먹히지 않은 상황까지 치달은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늘리라는 중소기업 대출 대신 가계대출을 확대하면서 뒤탈을 걱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신용대출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의 압박도 문제지만 갑작스러운 대출중단 사태를 피하려면 4분기 들어서부터 대출을 조절했어야 한다”며 “은행권 스스로 대출 관리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은행권 신용대출이 중단되면서 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과 사금융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 지난달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4조7000억원 증가하며 2016년 12월 이후 4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상호금융(2조1000억원)과 여신전문금융사(1조1000억원), 저축은행(9000억원)에서 두드러지게 늘었다. 신용카드사의 카드론과 보험사의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출절벽 사태는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커지는 건 개별 금융사 입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국가적 위험이 발생한다”며 “당분간 총량관리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총량 목표를 지키지 못한 은행은 내년 대출 증가목표를 깎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속을 어긴 은행에 일종의 패널티(벌칙)를 주겠다는 의미다. 은행권으로서는 당분간 대출 문턱을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교하게 대출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내년까지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