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나의 올 댓 트렌드)조금은 유치해도 유쾌하게, 키치

by김서나 기자
2008.12.02 13:15:00

[이데일리 김서나 칼럼니스트] 패션 트렌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원하는 패션리더들은 때론 지나치게 튀는 룩을 선택해 워스트 드레서로 보일 위험까지 감수한다.

남과 다르고 싶을 때 찾게 되는 대표적인 패션코드가 바로 키치(kitsch). 조금은 유치한 알록달록 색상과 그림, 과장된 장식들의 키치는 팬시 소품과 같은 재미와 함께 패션 주류에 반항하는 쾌감도 가져다준다.

키치는 통속적이고 저급한 예술을 이르는 단어로 출발했다. 산업화의 물결이 유럽을 휩쓴 19세기 말, 대중문화도 점차 커지면서 중산층은 귀족들만이 향유했던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아직 안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저가의 그림들이 제작되고, 물건을 속여 파는 행위가 이어지자 이들을 뜻하는 말로 키치가 쓰인 것.

비록 키치가 예술을 흉내 내는 수준으로 시작했다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중 속에 자리 잡은 예술 장르로서 그 의미를 갈아입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극적, 즉흥적으로 표현되는 키치는 점차 더욱 가볍고 조잡한 모습으로 B급이기를 자처하며 기성 예술을 비웃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키치는 팝아트와도 연결되는데, 유머와 만화,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뒤를 이어 제프 쿤스가 장난스런 키치 요소를 잘 살려내고 있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오타쿠의 감성을 소재로 한 나라 요시토모,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들은 대중적인 인기도 높다.

대중문화로서 상업적인 가치도 요구되다보니 현대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은 종종 딱딱한 액자에서 벗어나 키치 스타일의 상업 제품으로 대중과 만난다. 인테리어 소품에 그려진 나라 요시토모의 뿌루퉁한 소녀들, 루이 비통의 고유 문양에 개성을 더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그림, 롱샴 백을 꾸민 트레이시 에민의 패치워크 등.

현대 예술가의 독특한 재능에 기대는 패션 브랜드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키치 패션도 많다. 기존의 패션 룰을 거부하는 이들은 오히려 이를 해체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을 발휘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의 근엄한 클래식 룩을 파격적으로 비틀었고, 마돈나의 콘브라를 비롯한 쇼킹한 패션을 선보인 장 폴 고티에는 앙팡테리블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자유와 풍자를 내세웠던 프랑코 모스키노는 하트와 반전 모티브를 브랜드 심벌로 내세워 키치적인 매력을 어필했다.



재미있는 그림과 로고를 니트에 넣는 소니아 리키엘과 동화 삽화와 같은 일러스트를 즐겨 사용하는 츠모리 치사토는 걸리쉬 키치로 사랑받는 디자이너들.

올 가을, 겨울엔 모델들의 머리에 미니 마우스와 같은 귀 장식을 달고 베이비돌 스타일을 입힌 잭 포즌과, 광대 복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형형색색 그래픽 무늬를 선보인 엘리 키시모토가 키치 코드를 이어갔다.


또한 팝아트를 적극적으로 접목해온 장 샤를르 드 카스텔바작은 이번 시즌 스마일 모티브와 유머러스한 그림 프린트를 전개했는데, 내년 봄을 겨냥한 컬렉션 무대에는 오바마의 모습을 담은 드레스를 올려 화제를 일으켰다.

키치 룩을 실제로 응용하기에 무난한 방법은, '저런 건 도대체 어디서 구했지?' 싶은 것 하나를 골라 포인트로 코디네이트하는 것. 흔하지 않은 중고, 빈티지 제품이나 난해한 색상, 커다란 디테일의 옷을 골라보자. 왕구슬 목걸이나 직접 짠 듯한 손뜨개 액세서리도 좋다.

자신감이 붙었다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엉뚱한 믹스 앤 매치도 도전해볼까.

키치 문화가 가볍고 저속해보여도 인정받는 이유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 그러니까 가장 키치다운 패션은 바로 제멋대로 연출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일까 걱정은 접고 마음껏 즐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