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①한은 총재 "변화엔 고통 따른다"

by이학선 기자
2005.05.24 13:54:47

고교생 경제교육 특강

[edaily 이학선기자] 한국은행이 600여개 학교, 13만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경제교육 대장정에 돌입했다. 금요강좌 등을 통해 일반인과 접촉을 넓혀온 한은은 박승 총재의 경복고등학교 강연을 시작으로 청소년 경제교육의 첨병으로 나섰다. 박 총재는 24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에서 120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90분 동안 우리 경제의 실상과 과제 등을 중심으로 열띤 강연을 펼쳤다. 고등학생 시절 얘기로 운을 뗀 박 총재는 실생활의 예를 들며 쉽고 자세하게 강의를 풀어갔다. 불과 45년만에 국민소득 80달러에서 1만7000달러에 이르게된 과정과 저성장, 고실업, 양극화 문제 등 우리경제의 당면 과제를 조목조목 짚은 뒤 경제와 사회, 정신측면에서의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박 총재 강의내용이다. 1952년, 고등학생 전북 이리 기계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나 자신의 장래와 나라에 대한 고뇌를 했다. 당시 경제학을 전공해서 대학교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형편에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중심으로 강의하겠다. 충남 공주 백제 무녕왕릉이 있다. 1500년전 임금이다. 30~40년 전 무덤이 발견돼서 생활상을 나타내는 유물들이 발굴됐다. 그 유물이 공주에 있는 박물관에 소장돼있다. 박물관 유물보고 깜짝 놀랐다. 1500년전 임금이 쓰던 물건이 내가 고2때 쓰던 물건과 똑같다. 다리미가 발견됐다. 인두, 들기름 등잔 등. 1500년동안 무엇이 변했나. 지금은 10년전에 와본 사람도 서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뀐다. 그런데 과거에는 1500년동안 똑같이 살아온 게 아닌가. 매년 경제성장률이 5%, 6%, 7% 과거 역사처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의 공통된 법칙은 변화, 발전이 없는 것이다. 곧 성장률이 제로라는 얘기다. 그 학자는 오늘날의 문명과 경제발전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부터 경제발전 이뤄졌다.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였다. 80달러 만드는 데 최소한 4300년전 단군 이전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단군 때부터 하더라도 80달러 만드는데 4300년 걸리는 게 대한민국 역사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살아왔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7000달러다. 80달러에서 1만7000달러 늘어나는데 불과 50년도 안 걸렸다. ◇"세상, 이렇게 변했다" 어렸을 때 목화를 심었다. 베를 짜서 김제시에 가서 검정물 들여 만든 옷을 입고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여러분들의 환경과 내 중고등학교 때 환경을 비교하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를 본다면 성장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은 240년전 영국 산업혁명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다운 성장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경제발전이란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1960년대 전인구의 60%가 농민이었다. GDP의 34%가 농업에서 나왔다. 현재는 전체 인구 가운데 농민의 비중은 6%에 불과하다. 농업생산은 국내총생산에 3%에 불과하다. 이를 비교하면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농업사회에서 바뀌기 위해선 노동력 자본 기술이 필요하다.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노동력밖에 없었다. 자본과 기술은 외국에서 빚을 얻거나 도입했다. 이를 우리나라 노동력과 결합해 수출해서 경제발전의 시동을 걸었다. ◇"위기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경제발전은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가난의 고통을 참고 땀흘려 일한 부모와 할아버지 세대 노력의 결과로 경제발전이 시작됐다. 지금도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 약 23억의 인구, 190개국 중 약 60개 국가는 1인당 소득이 약 4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하루 1000원으로 살아야하는 가난에 처해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인당 하루 5만원으로 살고 있다. 북한은 지금도 2000원으로 살고 있다. 이는 여공들의 가난과 고통에서 눈물로 만들어낸 성장이다. 여러분의 선배가 땀과 눈물로 만든 유산인가를 깨우쳐야한다. 아껴쓰고 깨끗이 쓰는 국민적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경제는 위기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외채위기, 기업도산 위기, 석유파동, IMF 파동 등 위기가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뤘다. 지난 40년동안 평균 8%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40년간의 고도성장은 세계경제발전 사상 대한민국이 최초다.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를 45년만에 1만7000달러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선진국에서 150~200년 걸린 일을 한국은 지난 40여년만에 해냈다. 이를 압축성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1995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했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고임금, 성장에 저해" 이렇게 성장하다보니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발전을 가로막는 생존환경 변화 2가지만 설명하겠다. 첫째는 임금이 많이 올랐다. 그런 와중에 저임금 중국이 부상했다. 월급은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월급이 많을 수록 생활이 여유있게 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월급은 생산비용이다. 임금이 높으면 높을수록 생산비용이 오르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 월급을 매달받는 소득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월급이란 그 경제활동, 생산활동이 존재할 가치가 있느냐를 판단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예를 하나 들겠다. 중고등학교 때 하루 일당은 3000원이었다. 쌀 한되 반이다. 하루 3000원 번다는 것은 오늘 하루 3000원 만큼은 일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 이삭줍기가 있었는데, 일당 3000원 줬다. 그러나 월급이 오르면서 할 가치가 없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하루 임금이 10만원이라는 것은 하루 돈벌이가 10만원이 되지 않는 일자리는 할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일당 10만원이 안되는 일자리는 퇴출될 수밖에 없다. 지금 옷부터 냉장고 등 중국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이렇게 싼값으로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퇴출될 상황에 처해있다. ◇"무한경쟁 시대, 경쟁력 없으면 퇴출" 두번째 변화는 개방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개방시대는 정치적 국경은 있지만 경제적 국경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고등학교 농구 축구 시합에서 고등학생만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보호주의적 시합이다. 그러나 개방시대가 되면 세계 모든 선수들이 다 오는 것이다. 월드컵이다. 이게 바로 개방이냐 보호주의냐의 차이다. 바둑에서 못두는 사람이 몇 수 두는 것은 보호주의, 아마추어의 게임이다. 개방시대는 프로게임이다. 세계에서 제일 잘 두는 사람만이 우승한다. 개방시대가 보호주의 시대와 다른 점은 경쟁상대가 전세계라는 점이다. 이는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고통의 과정을 겪는다. 현재 우리는 그 과정에 있고 앞으로도 그 과정에 있을 것이다. ◇"경제는 냉혹..기업 외국으로 뜬다" 환경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위기를 가져다주고 있는가. 첫째 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해서 도산하고 농촌의 황폐화 현상이 생겼다. 특히 저임금에 의존하고 사람많이 쓰고 기술이 낮은 기업은 예외없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여기서 나오는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위기에 몰려있다. 둘째는 투자가 우리나라에 되지 못하고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데 있다. 자동차 공장이 잘 되고 있는데, 미국에 가서 짓고 중국에서 짓고 인도에서 짓고 슬로바키아에 짓는 등 외국에서 짓는다. 조선, 강철 등도 그렇다. 외국으로 상당부분이 흘러가고 있다. 이 때문에 고용도 안되고 일자리도 줄어든다. 애국심이 부족해서인가. 경제법칙은 애국심과 관계없다. 경제법칙은 냉혹한 이치로 결정된다. 월급 오르고 땅값 오르니깐 기업들이 외국으로 간다. ◇"사오정·오륙도, 변화엔 고통 따라" 셋째가 실업문제다. 흔히 말하는 고용없는 성장이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대학나올 때쯤 여러분들은 그 걱정이 없을 것이다. 졸업할 때쯤이면 조정이 끝나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정 과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살고자하니까 사람을 줄이게 된다. 예를 하나 들겠다. 예전엔 은행업무의 100%를 사람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은행업무의 80%가 기계가 한다. 인터넷 뱅킹, ATM, CD기 등등. 그러다보니 은행쪽 발전이 빠르다. 작년 은행 순이익은 재작년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사람은 자꾸 자른다. 임금이 높으니까 사람 대신 기계를 쓴다. 그러다 보니 은행은 발전해도 사람은 잘라낸다. 은행보고 사람 잘라내지 말라고 할 수 없다. 은행 발전 못하는 것 아닌가. 이마트 등 할인점이 있다. 그러나 할인점이 생긴 이후 주변에 있는 구멍가게, 재래시장 심지어 음식점까지 어렵게 됐다. 불가피하고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 과정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회사 하나 잘되기 위해 수천명이 고통을 받는다. 기업도산 문제, 투자유출문제, 실업문제 등이 얽혀서 지금 우리가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