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예루살렘 선언 파장…중동 지도자들 "美 만남 거부할 것"

by김형욱 기자
2017.12.10 15:47:38

이집트 종교지도자·팔레스타인 수반 美부통령 만남 '거부'
팔레스타인에선 연일 유혈 시위…4명 죽고 1000여명 다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분노한 팔레스타인인 시위대가 9일(현지시간) 예루살렘 인근 베들레헴에서 시위를 진압하려는 이스라엘 장갑차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AFP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선언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이슬람권 분노를 삭이려 중동을 찾지만 중동 주요 지도자들은 그와의 만남 자체를 거부했다.

이집트 콥트교회는 교회 수장인 타와드로스 2세가 오는 20일로 예정됐던 펜스 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키로 했다고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콥트교는 이집트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기독교 오르엔트정교회 일파다. 타와드로스2세는 가톨릭교 교황 격인 이곳 지도자다. 콥트교회 측은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발언을 거부의 직접적인 이유로 꼽았다. 이집트 최고종교(이슬람) 기관인 알아즈하르의 대 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 역시 하루 앞서 펜스 부통령과의 회동을 취소했다. 이집트는 아랍 내 대표적인 친미 성향의 국가인 만큼 관계 악화는 미국에도 타격이다.



이번 결정의 직격탄을 맞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반발도 거세다. 이곳 리야드 알말리키 외교장관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수반과 펜스 부통령의 회담 역시 취소하겠다고 외신에 전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트럼프 발언 직후인 6~8일을 ‘분노의 날’로 선포하고 연일 미국과 이스라엘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에 전투기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했다. 현지 언론은 그 여파로 9일까지 팔레스타인인 4명이 죽고 10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했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전에 이달 하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을 방문키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발언에 분노한 중동 지도자가 잇따라 그와의 회동을 취소하며 순방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아랍 세계의 반발과 유혈 충돌도 이어졌다. 중동·아프리카 내 아랍계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10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 외무장관 회의 후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국제법 위반이므로 무효”라며 “지역 내 긴장과 폭력을 끌어올리는 이번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아랍연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이와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도 주장하며 한 달 이내에 다시 한번 외무장관 회의를 열기로 했다.

22개국 아랍연맹의 외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긴급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소집된 이날 회의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