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독립전쟁)⑤나는야 `석유 장돌뱅이`

by이진우 기자
2006.12.12 14:00:00

한국 석유탐사 주력부대는 582세대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사무소 장성진 탐사부장은 스스로를 '석유 장돌뱅이'라고 부른다. 17년 회사 생활의 절반은 석유를 찾아 해외로 떠돌아 다녔다. 알제리 사하라 사막, 베트남의 열대해양을 거쳐 지금은 카자흐스탄의 얼어붙은 벌판에 둥지를 틀었다.

장 부장은 "집사람과 쌍둥이 아들들을 하도 오지로만 끌고 다니다 보니 집사람과 둘이서 왜 석유는 뉴욕이나 런던 한복판에서는 나오지는 않는 걸까 하며 불평을 하기도 했었다"며 "이렇게 떠돌게 된 것도 알고보면 우리나라에는 석유가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석유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흔히 '오일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같은 '오일맨'이라도 석유가 나는 산유국의 오일맨과 한국의 오일맨은 처지와 환경이 180도 다르다.

산유국의 오일맨은 일반적으로 자국의 유전과 가까운 도시에 산다. 해외에 나갈 일이 있더라도 대부분 단기 출장이다. 그러나 한국의 오일맨은 아프리카의 사막과 열대지방의 바닷가, 시베리아 벌판 등 오지로만 찾아 다닌다. 석유가 그런 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으면 그게 출장이다.



우리나라에는 '석유가 났으면 좋겠다'는 애타는 희망만 있을 뿐 '석유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대학에 전문강좌가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래서 장 부장과 비슷한 연배의 오일맨들은 석유개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영어공부를 먼저 했다. 회사에서 고용한 푸른 눈의 기술고문에게 틈나는 대로 배우다보니 영어와 석유개발 기술이 같이 늘었다.

장 부장은 "나는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면서 꿈을 이룬다고 생각하니 보람이 넘치지만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특히 후진국들을 돌아다니며 국제학교에만 다니던 아이들이 그나마 몇 안되는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어 아쉬워할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 한국의 ""오일맨""들이 자리잡은 유전들
한국의 오일맨들에게는 가족들과의 아픈 기억 말고도 또 다른 상처들을 하나씩 갖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동료들과 조직이 모두 와해되어 버린 악몽같은 기억이 그것이다.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해외 유전에 쏟아부어야 할 비용은 하루아침에 두 배로 뛰어올랐지만 언제부터 돈이 될 지는 하느님도 모르는 사업. 해외유전개발사업에 몸담고 있던 오일맨들은 외환위기가 닥치자 돈 먹는 하마로 낙인찍히며 구조조정 영순위로 떠올랐다.

후배들의 신망을 받던 석유개발 기술자들과 수년간 사막을 누비며 현지인들과 깊은 인연을 나누던 중요한 키맨들이 외환위기를 맞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났고 근근히 이어오던 기술과 노하우, 조직은 모두 무너지다시피 했다.

관련업계의 한 관계자는 "석유개발이란 게 회사조직을 떠나면 아무 쓸모가 없는 기술"이라며 "회사를 떠난 오일맨들은 채소장사를 하기도 하고 학원강사로 업종을 바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요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오일맨들은 외환위기 당시에 함께 동고동락하던 선후배들을 떠나 보낸 그런 아픈 기억들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 국내 업체들이 일궈내고 있는 해외 석유개발 성과들은 그래서 더 값지고 눈물겹다.


▲ 해외 석유개발 사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베트남 15-2광구. 석유공사와 SK가 23.2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유개발 사업을 이끄는 사람들은 대부분 5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입사하고 20여년간 석유개발 사업에 몸담아온 '582세대'다. 이른바 386세대의 바로 윗 선배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석유공사 곽정일 카자흐스탄 사무소장은 83년 입사이후 23년동안 국내 대륙붕 탐사와 해외유전개발에 몸담아온 유전개발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베트남 11-2광구와 카자흐스탄 아다광구 등 석유공사가 자랑하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엔 모두 곽소장의 이름이 올라있다.

석유공사 김성훈 신규사업 단장도 지질학 박사 출신으로 95년부터 베트남에 근무하면서 롱도이 가스전 발굴사업을 성공시킨 베테랑 오일맨이다. 최근에는 베트남 11-2 가스전의 개발과 생산, 판매, 수송 등 일련의 계약들을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LG상사의 에너지 사업부장 장현식 상무도 대표적인 582세대의 핵심멤버다. 83년 LG상사에 입사해서 91년부터 15년 넘게 해외자원개발 외길을 걸어온 전문가다. LG상사가 오만, 베트남, 카자흐스탄에서 잇따른 성공작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늘 장 상무가 지휘를 맡았다.

현대종합상사의 김원기 자원개발본부장도 1세대 오일맨 가운데 한사람이다. 아직도 오일맨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예멘 마리브 유전'의 지분인수 작업을 시작으로 현대상사가 진행해 온 다양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현장에서 바라 본 산 증인이다. 84년 입사이후 22년동안을 자원개발분야에서 일했다.

SK(주) 김현무 석유개발사업부장도 83년 SK 원유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23년동안 원유 트레이딩과 원유개발 분야에 몸담아온 원유 전문가다. 국내 민간업체 가운데 해외 자원개발을 가장 활하게 진행중인 SK(주)의 석유개발사업을 2003년부터 사실상 이끌어왔다.

SK(주)의 이양원 상무도 83년 유공 입사후 줄곧 석유개발 사업 업무를 담당해 온 이분야 베테랑급 전문가다. 96년부터 SK의 석유개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5080세대의 뒤를 받치는 386세대 오일맨들도 세계 곳곳에서 노하우를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다.

박일래 석유공사 예멘사무소 팀장은 중동지역의 신규사업 발굴을 맡고 있는 엔지니어다. 90년 석유공사에 입사한 후 현재 한국기업이 참여한 유전개발 사업 중 가장 많은 양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리비아의 엘리펀트 유전의 개발사업을 담당했다.

백오규 석유공사 나이지리아사무소 탐사팀장은 올해 우리나라가 자원외교의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있는 나이지리아 심해 탐사광구 입찰을 위한 사업성 평가와 실무협상을 담당한 주역이다. 이 프로젝트는 인도 석유공사와 맞붙어 입찰금액에서는 밀렸으나 광구 개발권을 주면 발전소를 지어주겠다는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낙찰에 성공한 프로젝트다.

SK(주)의 김태원 석유개발사업 운영팀장도 88년 입사후 유공 미얀마지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97년에는 미국 CSM대학에서 자원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전문인력으로 입사후 19년간 석유개발사업을 담당한 내공있는 오일맨이다.

해외 유전개발을 위해 전세계 현장에 나가 있는 오일맨들은 석유공사만 100명이 넘는다. 다른 민간업체들의 파견직원들과 수시로 현지에 출장을 떠나는 '사실상의 현지인들'을 까지 합하면 200명에 육박한다.

그들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꿈이 있다면 '석유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이다. 낚시꾼들이 월척을 낚아 올리던 순간의 손맛에 빠지듯, 지구상의 오지들을 정복해가며 유전을 찾아다니는 오일맨들의 꿈이 살아있는 한 우리는 이미 200개에 가까운 잠재적 유전을 갖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