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점을 찾아서]⑨외식 트렌드 변화의 이정표 '빕스 등촌점'

by김용운 기자
2018.01.27 14:26:53

1997년 3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 공항로에 개점
외식과 드라이브 결합 등 시대 변화 읽어
토종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로 성장

빕스 등촌점(사진=CJ푸드빌)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일본은 1950년 한국 전쟁 발발로 배후 군수기지 역할을 하며 경제부흥의 기틀을 마련한다. 덕분에 일본은 196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연평균 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아시아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는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하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다. 또한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혼다와 도요타 등 자동차 기업의 성장과 맞물려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각 가정마다 차가 있는 마이카 시대를 연다.

◇경제성장, 외식문화 변화를 이끌다

1994년 제일제당 식품사업부(현 CJ푸드빌)는 삼성그룹에서 분가 후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기업인 스카이락과 제휴를 맺고 외식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스카이락은 1962년 일본 도쿄에서 유통업체로 창업한 후 1970년대 시내 중심이 아닌 교외에 매장을 내는 방식으로 패밀리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한 기업이었다. 스카이락은 일본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차를 타고 도심 외곽으로 나가 외식을 하는 일본 사회 변화를 포착하고 이를 놓치지 않아 성공한다. 제일제당은 당시 전 세계에 90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스카이락과 제휴를 맺으며 외식업에 뛰어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국민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외식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특히 패밀리 레스토랑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기존의 냉동·육가공사업과 연계해 기존 사업구조를 강화하고 소비자들에게는 값싸고 좋은 분위기에서 양질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외식업에 참여한다.”

◇패밀리 레스토랑 격전지 된 공항로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이전인 1990년대에는 김포국제공항이 한국과 서울의 관문이었다. 서울 도심에서 김포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서 강서지역의 공항로를 이용해야 했다. 강서구를 가로지르는 한 공항로 주변은 도심이라기 보다는 한적한 시골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가양동과 등촌동 등의 벌판을 택지로 개발하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신흥 주거지로 탈바꿈한다. 특히 공항로와 강서로가 만나는 등촌동 88체육관 인근은 부도심으로 급격히 성장한다. 제일제당은 1994년 12월 88체육관 근처 공항로 대로변에 스카이락 매장을 연다. 이후 공항로 대로변에는 아웃백과 코코스 등 패밀리 레스토랑이 속속 들어선다.

빕스 로고
스카이락과 제휴해 외식산업에 발을 디딘 제일제당은 1996년부터 독자적인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 론칭을 준비한다. 스카이락을 통해 패밀리 레스토랑 운영의 노하우를 익히면서 자신감을 얻었지만 외국 브랜드라는 한계가 있었다. 로열티와 본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일본의 외식문화와 한국의 외식문화에도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고급 메뉴로 분류되는 소고기 스테이크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여기에 코코스와 TGIF, 아웃백 등 외국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와의 경쟁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빕스 등촌점, 토종 패밀리 레스토랑 시대 열다



1997년 3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 669의 단독 건물에 개장한 빕스(VIPS) 등촌점은 CJ푸드빌의 대표적인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 빕스의 1호점이다. 등촌점은 빕스의 1호점이라는 의미 외에도 국내 외식산업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매장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의 증가와 외식문화의 변천, 그리고 외식산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국산 브랜드의 1호점 매장이기 때문이다.

등촌점은 철저한 상권 분석 끝에 문을 열었다. 먼저 당시만 해도 서울 외곽이었던 강서구 등촌동 공항로 인근은 부동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여기에 등촌동과 가양동 인근 1만 2000여 가구의 중대형 아파트가 입주하면서 외식 수요가 발생하고 있었다. 또한 서울의 관문인 공항로 인근에 입점함으로써 광고 효과도 계산했다. 이를 위해 등촌점은 매장 외관부터 신경을 썼다. 테라스형 실내에 대형 전면 유리창을 이용해 공항로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탁 트인 전망을 자랑했다. 필로티 공법으로 지은 매장 1층에 주차장을 마련해 차를 가지고 오는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마이카 시대에 맞는 매장을 꾸민 것이다.

주 메뉴 또한 스테이크 외에도 국내에서는 대중화 되지 않았던 연어요리를 강화했고 샐러드바와 베이커리바, 수프바 등을 마련했다. 여기에 ‘오픈 라이브 키친’으로 고객이 조리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해 신뢰도를 높이고 즉석에서 바로 만든 음식을 제공했다. 등촌점은 인근 지역 주민 뿐 아니라 서울 강서 지역의 명소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개점 4개월만에 10만명의 고객이 다녀갔으며 매출은 18억원을 넘겼다. 제일제당은 빕스 등촌점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고 빕스 매장 확대에 나서며 본격적으로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과 경쟁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스카이락은 점차 비중이 약해졌고 마침내 2006년 CJ푸드빌과 계약을 해지하며 한국에서 철수한다.

◇연매출 1조 4000억원 외식기업의 토대를 닦다

빕스 등촌점 외관(사진=김용운 기자)
등촌점이 문을 연 지 21년이 흐른 2018년 현재 빕스는 외국계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패밀리 레스토랑 선두 업체로 올라섰다. 등촌점 개점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빕스를 방문한 고객은 약 1억 9700여만명에 달하며 자체 개발한 스테이크 300여종을 출시해 7000만개 이상 팔았다. 국내외 80여개의 매장에서 연 매출 3000~5000억원을 올리는 대형 외식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빕스는 연 매출 1조 4000억원 규모의 종합외식기업으로 성장한 CJ푸드빌 탄생에 기반이 되었다. 빕스에서 발생한 매출을 기반으로 CJ푸드빌은 제빵 프렌차이즈인 뚜레주르와 커피 프랜차이즈인 투썸플레이스 등을 출범하며 사세를 확장하고 외국 외식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앞서 갈 수 있었다. 실제로 빕스는 매장에서 뚜레주르와 투썸플레이스와 연동한 메뉴 등을 선보이며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 보다 효율적으로 매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빕스 1호점 위상 여전히 높아

독립 매장인 등촌점은 여타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의 1호점들과 달리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다. 특히 등촌점은 한국의 외식산업사에서 외국에서 들여온 사업모델을 국산화해 토종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시킨 국내 기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경제성장과 맞물린 외식 트렌드 변화의 이정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등촌점은 2011년 전반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도 공항로 일대 패밀리 레스토랑의 흥망을 견뎌내며 1호점 매장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주말 오후 예약을 하지 않고 방문했다가는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빕스 등촌점 내부(사진=김용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