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 글로벌 車)②디트로이트의 흥망성쇠
by피용익 기자
2009.06.01 12:02:04
100여년전 세워진 자동차제국 몰락
일본 등 아시아 업체 급부상
대형차 집착과 노조 문제가 몰락 원인
[이데일리 피용익기자]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도시다. 모터시티, 모타운 등 애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트로이트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은 크다.
수십년 동안 자동차가 미국 제조업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영향이다. 실제로 `디트로이트 빅3`로 불리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는 전세계 자동차 업계를 대변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자부심은 지난 1년 사이에 완전히 무너졌다. 미국의 구(舊) 경제를 이끌어 왔던 디트로이트는 몰락했다. 크라이슬러는 파산보호 하에서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며, GM은 1일(현지시간) 파산보호를 신청할 예정이다.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진 영화배우 알렉 볼드윈의 표현을 빌자면, 크라이슬러는 죽었고, GM은 생명이 다 해가고 있으며, 포드는 투병중이다. 디트로이트의 100여년 역사에서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는 것이다.
디트로이트 빅3의 역사는 1900년대 초에 시작됐다. 헨리 포드가 지난 1903년 6월 16일 디트로이트 근교에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5년 후인 1908년에 GM이 설립됐고, 1925년에는 크라이슬러가 탄생했다.
이 때부터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독일과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 왔다. 미국은 자동차를 대량생산하며 생산량 면에서 유럽을 압도했다. 올즈모빌의 대량생산 기술을 도입한 포드는 1914년 당시 15분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어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미국인 노동자가 살 수 있을 정도로 싼 값에 차를 공급함으로써 미국을 자동차 대국으로 탈바꿈시켰다.
미국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쥐게 된 대는 광대한 땅덩어리 영향이 컸다. 마차보다 강력한 수송 수단에 대한 수요가 컸기 때문에 자동차의 보급이 급속히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
| ▲ 올즈모빌이 1901년 생산한 자동차. 올즈모빌은 1908년에 GM에 인수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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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자동차 업체 가운데 GM은 특히 인수합병(M&A)로 몸집을 키웠다. 1908년에 올즈모빌을 인수했고, 1년 후에는 캐딜락을 사들였다. 1918년부터 1931년까지는 시보레, 복스홀, 오펠, 홀덴 등을 계열 브랜드로 만들었다. 1954년 GM은 미국 시장 54%를 점유했다. 당시 찰스 어윈 윌슨 대표는 "국가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다"는 말을 남겼다.
GM은 최근까지도 이스즈, 사브, 허머, 대우자동차 등의 지분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그 결과 GM은 지난 2008년까지 77년 동안 미국 내 선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포드는 2007년까지 56년 동안 2위를 기록했다. 두 업체를 밀어낸 것은 일본 도요타였다.
1970년대 말까지 미국 자동차 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GM이 당시 고용한 인력은 61만8365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미국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였다. 미국 외 국가에서는 23만5000명이 더 고용돼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도요타 등 아시아 자동차 업체들의 미국 공략이 본격 시작됐다. 이는 고유가 상황과 더해져 미국 자동차 산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GM은 1986년에 북미 공장 11개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1991년에는 당시 사상최대인 44억5000만달러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후 미국 자동차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GM은 공장을 추가로 폐쇄하고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크라이슬러는 독일 다임러와 합병해 시너지 창출을 모색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포드의 입지 역시 좁아졌다.
2000년대 들어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한국의 현대차(005380)도 빠른 속도로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
특히 지난해 금융위기와 고유가로 인해 미국인들의 소비가 급감하면서 대형차 중심의 미국 업체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미국산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한 틈을 타 일본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를 개발하며 미국 시장 공략을 더욱 거세게 전개하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표면적으로는 아시아 업체들의 부상 때문인 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아시아 업체들이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 업체들의 안일한 대응이 있었다.
예컨대 최근 각광받는 전기차를 처음 개발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890년대부터 전기차 개발을 시작했고, 1900년에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10여종의 전기자동차가 생산됐다. 당시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4192대 가운데 28%는 전기차였다.
그러나 포드가 1908년에 저가의 휘발유차 `모델T`를 출시하면서부터 전기차는 급속히 자취를 감췄다. 결국 전기차는 1920년에 단종됐다.
미국이 전기차 주도권을 잡을 기회는 또 있었다. 1970년대 들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국에는 `씨티카`와 같은 전기차가 등장했다. 또 1990년대 들어 GM은 `EV1`이라는 전기차를 출시했다. 그러나 짧은 운행거리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1999년에 단종됐다.
문제는 이후 미국 업체들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손을 놓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휘발유를 잡아먹는 8기통 대형차 개발에 혼신을 쏟았다. 이는 경기후퇴와 고유가 상황이 맞물리며 판매 급감으로 이어졌다.
강성 노조를 미국 자동차 몰락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임금과 퇴직자 건강보험료 등 노조에 유리한 노사 계약으로 인해 판매가 급감하자 회사의 현금이 빠르게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편 로널드 레이건 정부 이래로 근 30년간 지속되어온 저연비와 낮은 휘발유세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폴 크루그먼이나 토머스 프리드먼과 같은 경제학자들은 특히 휘발유세가 높지 않아 작은 자동차를 살 유인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중 가장 싼 휘발유 덕택에 미국인들은 탱크나 트럭과도 같은 대형차를 타게 됐고, 이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자동차의 경쟁력을 깎아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유가가 급등하면서 미국의 자동차를 더욱 더 매력없게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