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악어''에 다들 난리지?
by조선일보 기자
2008.08.28 11:36:42
[조선일보 제공] "양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펜디 양가죽 가방이라고 말하진 않죠. 소가죽으로 만들었다고 샤넬 소가죽 가방이라고 하나요. 그런데 악어가죽으로 만들면 버킨 악어 백이라고 콕 집어서 말들 하잖아요. 악어가방은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한 법입니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홍보대행사 인트렌드 대표)씨는 '악어의 부활'을 이렇게 정의했다. '동물보호' 주장을 비웃듯, 패션 월드에서는 '악어'가 최고 인기다.
1980년대만 해도 악어가죽은 모름지기 '대칭형태'여야 '물건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산처럼 우뚝 솟은 등뼈를 중심으로 양쪽 가죽이 마치 접어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가죽 말이다. 한데 몇 년 전부터는 팽팽하고 평평해서 '바둑판'을 연상시키는 제품이 인기다.
인트렌드 박진희 과장은 "악어의 뱃가죽을 펼쳤을 때 나오는 넓은 사각형 무늬를 동물의 피부라기보다는 마치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처럼 보이도록 재해석한 제품이 최근 인기"라고 말했다. 펜디 로에베 입생로랑 랄프로렌 아이그너 같은 명품 브랜드는 물론 앤클라인 MCM 빈치스벤치 타임 등 중가 브랜드도 이 같은 패턴의 악어 백을 출시했다.
가죽색깔에 힘을 주는 것도 올 가을 특징. 이탈리아 브랜드 '로메오 산타마리아'의 멀티 칼라 백은 몸판·뚜껑·바닥·주머니·손잡이 버클·지퍼 끝부분까지 총 23가지 색깔의 가죽을 사용했다. '악어 퀼트'다. '콜롬보 비아 델라스피가'는 가죽을 천연염료로 염색해 에나멜처럼 윤기가 흐르는 총천연색 미니 토트백을 선보였다. 인기색은 핑크, 오렌지.
이탈리아의 피부과 의사였던 마로 오리티 카렐라(Carela)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납작한 악어가방만 있으란 법 있어? 동그랗게 빵빵 부풀린 백도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게다가 소가죽에 무늬 찍는 것보다 악어가죽을 부풀리는 게 더 고급스럽잖아."
카렐라가 피부과 의사 경력을 쏟아부어 만들었다는 '자글리아니(Zagliani)'백은 가슴성형 수술에나 쓰는 줄 알았던 실리콘을 악어가방에 주사해 볼륨을 극대화했다. 보톡스를 맞은 것 같다 해서 '보톡스 백'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가격은 약 1만 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1000만원이다.
한국에서 악어가죽은 아저씨들도 선호하는 아이템이다. 재운(財運)을 가져온다는 속설 덕분에 붉은색 악어가죽 지갑은 해마다 없어서 못 팔 정도. 콜롬보가 작년 혼수용품으로 쓰기 좋은 악어가죽 함을 내놓은 데 이어, 악어가죽 액자와 안경케이스까지 내놓는 '한국식 마케팅'을 선보인 것도 '아저씨' 고객들을 겨냥한 마케팅의 결과. 구두브랜드 '탠디'도 "악어 가죽 신발을 신고 미팅을 나가면 일이 잘 된다"며 악어가죽 신발을 100만원대에 내놨다.
최근엔 소가죽, 양가죽 가방에 악어무늬를 찍은 제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작년 샤넬이 천 가방에 악어가죽 모양으로 스티치를 박아넣은 일명 '페이크 백(fake bag·가짜 가방)'을 선보인 것을 시작, 올해도 마이클 코어스, 앤클라인, 타임, 안지크 등 수많은 브랜드가 송아지나 양가죽에 악어무늬를 찍은 '모크 크로크(Mock Crock·모조 악어가죽)'백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