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급물살]②구조조정·브렉시트 우려에 재정확대 절실…巨野 협상 '관건'

by박종오 기자
2016.06.19 15:33:58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는 매년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큰 주요 사업비 집행 내용을 목표를 정해놓고 점검한다. 올해는 중앙부처와 공공기관, 지자체, 지방 공기업 등 전체 중앙·지방재정 집행 목표액 446조 9000억원 중 59%(263조 6000억원)를 상반기에 몰아 쓰기로 했다. 연초 중국발(發) 증시 급락 등으로 경기 악화 우려가 커지자 하반기에 쓸 나랏돈을 미리 당겨쓴 것이다.

재정의 힘은 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5%(확정치 기준)에 불과했다. 지출 항목별 성장 기여도는 정부가 0.5%포인트, 민간이 0.0%포인트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민간 부문이 정체된 가운데 사실상 정부 지출이 성장을 이끌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조선산업 대량해고·구조조정 저지 울산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울산 일산해수욕장에서 현대중공업 앞까지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울산본부]

정부가 추경 편성을 적극 검토하고 나선 것은 하반기 경기에 먹구름이 끼면서 재정의 역할이 또다시 긴요해졌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GDP갭은 -1.45%로 2009년(-2%)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GDP갭은 실질 GDP에서 잠재 GDP(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최대 생산 수준)를 뺀 것이다. 이 수치는 2012년 -0.2%, 2014년 -0.9%로 매년 확대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성장 잠재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침체의 골이 깊어진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조선·해운 등 산업 구조조정이다. 조선소가 밀집한 경남 지역의 지난달 실업률은 3.7%로 작년보다 1.2%포인트 올라 전국에서 상승 폭이 가장 컸다. 본격적인 구조조정 시작 전부터 고용 악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란에서 보듯 미국 등 선진국이 통상 압력, 보호 무역 강화 같은 ‘고립주의’ 성향으로 돌아서고 있다”며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 국가에 장기적으로 커다란 악재”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1조 6000억원의 추경으로 경제 성장률을 0.15~0.36%포인트 끌어올렸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소한 지난해 적자 규모를 유지하는 수준으로는 재정이 경기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나라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는 6년 만에 가장 많은 38조원이었다. 올해 정부 목표치는 이 적자 규모를 36조 9000억원으로 줄이는 것인데, 4월까지의 누적 적자가 9조 2000억원으로 작년보다 적자 폭이 12조 9000억원 감소했다. 1~4월 세금이 전년 대비 18조원 1000억원 더 걷힌 덕분이다. 현 세수 흐름대로라면 10조원 이상의 추가 지출 여력이 있는 셈이다.

김정식 교수는 “성장률 둔화를 막으면서 이 수치를 0.2~0.3%포인트 높이려면 10조원 정도의 추경이 필요하다”며 “제2 경부고속도로 조기 착공 등 기간산업 투자를 앞당기면 일자리가 생기고 재정 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추경을 통해 세출을 6조 2000억원 늘려 이 중 1조 3000억원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썼다.

현행법상 추경을 편성하려면 △전쟁,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등 중대한 대내·외 여건 변화가 발생 또는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 의무 지출이 증가하는 경우 등이어야 한다. 정부는 이 중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침체, 대량실업 발생 우려가 구실이 되리라고 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대량실업 인지를 따지는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게 아니어서 결국 정치권과 합의하면 될 문제”라고 귀띔했다.

추경 재원은 통상 세계잉여금(정부 예산에서 쓰고 남은 돈), 한국은행 잉여금, 국채 발행을 통한 차입으로 조달한다. 추경에 쓸 전년도 세계잉여금이 1조원 대에 불과하고 야당이 국채 발행에 반대해, 남은 길은 올해 예상보다 더 걷은 세금을 추경 재원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다. ‘세입 증액 경정’이다. 다만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초과 세수는 법상 국채를 갚는 데 우선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어 법적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경 편성을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것은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야당과의 줄다리기를 우려해서다. 추경 협상 과정에서 야권이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 법인세 인상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 정책 운용의 관심이 단기 재정 확대에 쏠려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추경을 하는 것은 결국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완충하자는 목적인데, 추경은 해놓고 정작 구조조정은 진도가 안 나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구조조정이 더 중요한 이슈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꼬리’(추경을 통한 경기 부양)가 ‘머리’(구조개혁)를 흔드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