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이중장부의 오해와 진실

by김도년 기자
2016.05.15 14:17:03

모든 기업엔 이중장부 있어…회계 부정 목적인 것과 구분해야
대우조선도 이중장부 있는게 당연…원가율 낮게 추정한 데 대한 고의성 여부가 쟁점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2013년 6월, 2600여명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한 쌍용자동차가 회계 장부를 이중으로 쓰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야당과 쌍용차 노동조합,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시민단체는 쌍용차가 손실 규모를 부풀려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주장한 것이죠.

하지만 당시 외부감사인은 논란이 된 이중장부는 회계조작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계 오류 수정 과정에서 흔히 만들어지는 재무제표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회사가 제시한 재무제표와 감사인이 감사를 진행하면서 수정되는 재무제표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이중장부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겁니다.

회계부정 사건들을 취재하다 보면 이중장부란 단어는 참 많은 오해를 낳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회사가 장부에서 감추고 싶은 부실 자산이나 부채가 있을 때 이를 따로 기록한 회계장부가 있다면, 이 데이터를 외부 감사인에게도 제공하지 않고 외부에 공시도 하지 않았다면 이건 명백히 회계조작을 위한 이중장부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회계감사 과정에서 회사가 처음 제시한 재무제표의 수치가 여러 번 수정될 때, 이때 존재하는 여러 개의 회계장부를 이중장부라고 불러서는 곤란합니다. 우리가 글을 쓰고 여러 번 오타나 비문을 수정한다고 해서 글이 여러 개가 됐다고 이야기하진 않지요.

또 모든 기업은 재무회계와 관리회계를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주주, 채권자, 노동자, 시민사회 등 다양한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성하는 재무회계 장부가 있고 남들에겐 보여주지 않는 가계부처럼 경영진이 오로지 경영관리를 목적으로 작성하는 관리회계 장부가 있습니다. 이런 정상적인 과정에서 여러 개의 재무제표가 있는 것을 두고 뭔가 은밀한 이중장부가 있다고 비난하는 것도 곤란한 일입니다.



대우조선해양(042660)도 당연히 이중장부가 있습니다. 우리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는 재무회계 장부가 있고요,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해 말 삼정회계법인으로부터 실사를 받은 관리회계 장부도 있습니다. 삼정회계법인의 실사 장부는 기업의 부실 자산을 털어내는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보니 일반 재무회계보다 훨씬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진짜 알짜 자산을 선별할 수 있겠지요.

최근 대우조선에 대한 이중장부 논란도 이런 이중장부에 대한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언론은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를 인용해 최근 감사원이 산업은행과 대우조선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대우조선의 ‘내부관리용 원가추정자료’를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대우조선은 이 자료에 나온 것보다 훨씬 원가비용을 적게 추정한 자료를 과거 2013년과 2014년 당시 안진회계법인에 제출했다고도 했습니다.

저도 금융당국과 안진회계법인, 대우조선 등에 연락을 취해봤지만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다만, 대우조선은 과거 실적을 수정한 이유를 “해양플랜트 부문 원가율 상승에 따른 공사손실”이라고 최근 공시한 적이 있는데요, 이 공시 문구를 찬찬히 톺아보면 해양플랜트 부문 원가율이 상승했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는 자료가 하나 있을 것이고, 원가율이 과거보다 상승했으니 과거에는 원가율을 이보다 낮게 잡은 자료가 또 하나 있었을 거라고 미뤄 짐작해볼 수가 있지요.

‘내부관리용 원가추정자료’는 건설사나 조선사와 같은 수주기업에는 당연히 있는 겁니다. 국제 유가나 환율 등 외부 변수에 따라 회사의 매출원가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추정한 내부 관리용 자료가 없다는 것은 경영을 주먹구구식으로 했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 것이죠.

따라서 쟁점은 대우조선이 과거 영업실적이 부풀려지도록 원가비용을 낮게 추정한 것이 정말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인지, 일부러 손실을 감추려는 고의성이 있었던 것인지로 좁혀집니다. 고의로 원가를 축소해 재무제표를 만들고 엉터리 자료를 외부감사인에게 제공했다면 명백한 분식회계가 될 수 있겠지요. 이땐 정말 은밀하게 이중장부를 쓴 것이고 비판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최대한 정확히 추정하려 노력했는데도 정보가 부족한 탓에 원가추정에 심각한 오류가 생긴 것이라면 고의성은 없지만 과실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최종적인 진위 여부는 현재 진행 중인 금융감독원 회계감리를 통해 밝혀지겠지요. 감리 결과가 정말 궁금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