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커진 국회의 선진화법 ‘성장통’
by이도형 기자
2014.03.21 11:04:39
|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강창희(가운데) 국회의장, 새누리당 최경환(오른쪽) 원내대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원자력방호방재법 처리와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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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도형 기자] 여의도 정치권이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또다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특정정당의 단독 법안 처리가 어려워진 국회법 개정안(일명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여야 대치는 가팔라지고, 법안 처리는 더 어려워졌다. 이를 두고 여당은 선진화법은 우리 정치의 수준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그래서 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효율성만 추구해 온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뛰어넘을 단계라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 20일 강창희 국회의장은 여야 원내지도부를 국회의장실로 불렀다. 18일에 이어 두 번째 회동이다. 강 의장이 두 번씩이나 양당 원내사령탑을 의장실로 부른 것은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원자력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야 원내지도부는 거듭 상호간 이견만 확인했다. 양측은 이날도 합의에 실패했다.
원자력법 처리만을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개최를 요구하는 새누리당과 2월 임시국회때 양당이 처리에 일시합의했던 방송법 등 다른 법안과 일괄 처리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강 의장이 “국격이나 여러 면을 생각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할 것은 양보해달라”고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양당이 대립을 이어가는 것은 원자력법 처리만은 아니다. 기초연금법 제정안, 국정원 등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등을 놓고도 여야는 상반된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양당 지도부가 정치적 타협을 이루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청와대를 설득할 독자적 입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여당지도부는 야당을 설득할 다른 카드를 준비하기 어렵고, 다른 법안과의 연계가 유일한 원내 전략일 수밖에 없는 야당의 처지는 상황의 개선은 커녕 더 꼬이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정치풍토는 또다시 국회선진화법 무용론으로 이어진다. 특히 여당내에서는 “야당이 사사건건건 발목을 잡는 우리 정치문화에선 선진화법이 오히려 독(毒)”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최고·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선진화법은 민생 법안을 인질 삼아 국정 운영을 발목 잡는 협박 도구이자 이런 상황을 부채질하는 괴물”이라고 강조했다. 유기준 최고위원도 “이번 기회에 선진화법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회선진화법을 섣불리 고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 교수는 “지금 상황은 지방선거에서 여야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일어난 일”이라며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의미가 있으며 나중에 바꾸더라도 지금은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일단 국회 선진화법으로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는가”라며 “우리가 ‘빨리 빨리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상태라서 답답해 보이는 것이다. 일종의 정치문화 성장의 진통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판단은 여당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했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9일 “다수당이 날치기 강행처리를 포기하고, 소수당은 몸싸움 저지를 서로 내려놓고 협상장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결론을 이끌어 내는 선진화법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