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섭의 정치 엔터테인먼트학]GH는 어떤 배우인가

by강한섭 기자
2013.02.25 10:45:07

박근혜 정부의 이름은 무엇인가? 무슨 역사적 과업을 가진 정부인가? 그리고 당선인은 목표를 위해 어떤 투쟁과 희생을 치루는 운명으로 태어났는가? 다른 말로 하면 당선인은 어떤 캐릭터를 담당하는 배우인가?

질문이 당혹스럽다면 과거의 위대한 공연 기록을 살펴보겠다. YS는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로 규정하고 ‘신한국창조’를 국정지표로 내 세웠다. 그리고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했다. 그래서 전라도 분들도 관광버스로 상경하여 청와대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DJ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새 정부의 이름을 ‘국민의 정부’로 붙였다. ‘DJ 노믹스’와 ‘햇볕정책’으로 시대를 주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신비로운 수사학을 동원했다. 그리고 시민이 정치 행위의 주체라며 ‘참여정부’의 시대를 열었다. MB는 진보 정부 시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낙인찍고 ‘작은 정부, 큰 시장’의 해결책을 내놨다. 사람들은 747공약에 취해 잠시나마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렇다. 문민정부 이래 우리가 경험한 4명의 대통령은 공과를 떠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명가이자 실천가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위대한 배우였다. 그러나 한국은 냉정하고 정치는 음험하다. YS라는 타고난 배우는 임기 말 외환위기를 맞아 청와대에 유폐됐으며 정권을 야당에 넘겨줬다. DJ는 노벨 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글로벌 무대의 배우로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지만 세 아들을 감옥에 보내야 했다. 노무현이라는 혜성과 같이 나타났던 배우는 민심과 권력을 잃은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야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적으로 평가받겠다며 부지런하게 여러 작품에 출연한 다작 배우 MB는 지금 퇴임 후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이게 바로 한국 정치고 한국 대통령의 운명이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정치가 중앙?권력 즉 대권이라는 ‘단극자장’(單極磁場)으로?휘몰아치는?‘소용돌이’의?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모든 영광과 과오를 떠안게 된다. 또 다른 원인은 1988년 체제를 만들면서 장기 집권의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대통령 5년 단임제다. 한국의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바로 한계 시간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아차하면 임기 초에도 바로 레임덕에 빠진다. 원래 민주정에서 선거는 민심을 잃은 정치인을 강제로 장례 치르는 잔혹한 의식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는 현직 대통령의 목을 치는 단두대나 다름없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취임식의 슬로건이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로 정해졌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표현도 보인다. 행복과 희망, 좋은 말이지만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목표와 문제의식 그리고 사용할 전략과 전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사정이 이런데 대통령직 인수위는 혼란을 예방한다며 언론 접촉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몸을 사리다가 갑자기 원고지 130장 분량의 ’당선인 말씀‘을 쏟아낸다.

이념이 아니라 연극적 의식이 지배하는 감정 민주주의 시대에 관객으로서의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거리며 맞장구 쳐 주는 것이다. 이게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정치적 공감의 조건이자 출발점이다. 그런데 당선인에게 국민과 대화하지 않는 ’불통‘에 이어 최근에는 혼자 결정하는 ’밀봉‘ 이미지가 더해지고 있다. 당선인에 대한 지지도가 역대 최저 수준인 50%대에 그치고 있다. 지지했던 후보에 상관없이 취임식 전후의 시간들은 국민들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열정으로 좀 들떠 있어도 좋은 시간이다.

사람들은 박근혜라는 운명적인 배우의 감동적인 연기를 학수고대 하고 있다.

강한섭 (서울예술대학 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