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 입히는 망원동
by조선일보 기자
2007.10.15 14:28:36
예술가 10여 명이 동네 곳곳에 작품
주민들 반응 좋아 · 다음달 ‘시민 비엔날레’
[조선일보 제공] 신촌로터리를 출발한 마을버스가 홍대 정문을 지나 서교동 골목 등을 20여 분 동안 속속들이 누비며 도착한 종점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유수지 앞. 너른 모래벌판이 펼쳐진 유수지 체육공원을 연립과 다세대 주택·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다.
망원동은 서울 강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동네’다. 이 동네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 7월 헌신짝처럼 버려져 있던 회색 컨테이너가 빨강·주황·노랑색 옷으로 갈아입으면서부터.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와 동네를 예술 가득한 ‘거리 미술관’으로 채우기 위해 서울시가 예술가들을 파견해 주민들과 공동 작업을 벌이는 ‘예술과 일촌(一寸)맺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림·사진·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10여 명으로 구성된 공공미술 프로젝트팀 ‘공화국 리라’가 파견됐다. 예술가들은 동네 주민들의 발걸음이 잦은 너른 공터에 돗자리를 깔고 주민들을 초대하는 등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이들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작품 창작의 우선 조건으로 정하고, 그 틀 안에서 대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 있는 과제로 폭을 좁혀 나갔다. ‘어르신들이 함께 장기나 둘 수 있는 평상을 만들어달라’ ‘우리 집 외벽이 낡았는데 산뜻한 그림을 그려달라’ 같이 생활 속의 소소한 주제부터 ‘칙칙한 유수지 콘크리트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과감한 부탁까지… 처음에는 남 보듯하던 주민들의 부탁이 이어졌다. ‘흉물’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컨테이너 박스에는 꼬마들이 제 집 드나들 듯했고, 산책하던 어르신들도 “별일 없느냐”며 불쑥 들어서곤 했다.
| ▲ 마포구 망원동의 이 름 없 는 연립주택 벽을 꽃무늬로 장식하고‘꽃밭주택’이란 이름을 달아준 예술가들과 주민들. /‘공화국 리라’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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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결실로 골목 안의 이름 없는 낡은 연립주택이 예쁜 옷과 멋진 이름을 얻게 됐다. 손바닥만한 집들 스무 채가 마주보며 서있고, 집집마다 정성스레 가꿔놓은 화분 덕에 꽃으로 가득 찬 곳이다.
지난달 동네주민 80여 명이 이 집에 달려들어 사흘 동안 그림을 그리며 힘을 모았다. 지난 4일 외벽은 빨강·노랑·흰색의 갖가지 꽃들로 장식됐고 지어진 지 30여년 만에 ‘꽃밭주택’이라는 근사한 이름도 붙었다. 예술가들이 아크릴물감과 합판 등 재료를 만들어왔지만,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힌 ‘화가’들은 주민들이다. ‘꽃밭주택’이라는 이름도 주민들이 의견을 내 지었다. 조호연 작가는 “그림 그리는 공간은 함께 얘기꽃을 피우고 야식도 만들어 먹는 ‘사랑방’이 됐고, 작가들과 주민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 ▲ 단조롭던 단독주택 벽에도 아름다운 꽃무늬를 그려넣었다. /‘공화국 리라’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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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이재길씨는 지난달 “우리집 외벽도 좀 예쁘게 꾸몄으면 좋겠는데…”라며 말을 꺼냈다. 이씨 집의 심심한 회색 외벽도 박경희 작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지난 10일 노란 바탕에 보라색 꽃그림이 그려진 멋진 캔버스로 탈바꿈했다.
컨테이너 앞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주문한 장기·바둑용 평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인근 성미산 어린이집의 축대에 예쁜 벽그림을 그려넣는 작업, 동교초등학교 앞의 통학안전시설을 예쁘고 보기좋게 디자인하는 작업도 마무리 단계다. 어르신·아주머니·꼬맹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그저 그랬던 동네’ 망원동은 그렇게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이렇게 진행된 작업들은 다음달 중순 ‘시민 비엔날레’라는 근사한 이름의 전시행사로 꽃피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