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표 최악인데 지출 요구↑…확장 재정 vs 재정 관리

by이명철 기자
2021.04.06 10:00:00

관리재정수지 적자 112조·국가채무 846조 사상 최대
정부 상대국 대비 양호하다지만…재정 악화 추세 가팔라
“경제 회복국면 뒷받침해야” vs “불필요한 지출 부담만”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저성장 국면에서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쳐 정부의 재정 씀씀이는 더욱 커졌다. 늘어나는 지출에 비해 수입은 줄면서 주요 재정 지표는 더욱 악화하는 추세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반대에 막혀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백신 접종과 함께 올해 하반기에는 경기 회복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경기 반등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는가 하면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 지금부터 관리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 중이다.

강승준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이 지난 5일 국가결산 보고서 결과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가 6일 발표한 2020회계연도 국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총 세출은 453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대비 14.2%(56조5000억원) 늘어난 수준으로 재정정보공개시스템 열린 재정에서 관리하는 2011년 이후 최대 규모다.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포용성장의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총 세출이 크게 늘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세출 예산현액(당해연도 예산과 전년도 이월액)인 462조8000억원대비 집행률은 98.1%, 예산을 쓰지 않은 불용액 비율은 1.4%로 2007년 이후 각각 최고, 최저치를 달성했다. 그만큼 남김없이 예산을 적극 집행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국세 수입은 285조5000억원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대비 5조8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부동산 가격 상승과 주식 투자 열풍으로 양도소득세·증권거래세 등이 크게 증가한 영향이다. 다만 전년과 비교하면 7조9000억원 줄어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전년대비 감소를 나타냈다.

재정 지출은 급증한 반면 수입은 줄어들면서 재정수지는 자연스레 악화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71조2000억원 적자로 전년대비 적자폭이 59조2000억원이나 늘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같은기간 57조5000억원 급증한 112조원이다. 통합·관리재정수지 적자 모두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1년 이후 최대 규모다.

중앙·지방정부 채무인 국가채무는 1년새 123조7000억원 늘어난 846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대비 비중은 같은기간 37.7%에서 44.0%로 6.3%포인트 상승했다. 추경 편성을 위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국가채무는 626조9000억원이었는데 4년만에 220조원이 늘었다. 올해 연말 예상 국가채무는 956조원으로 또 다시 100조원 가량 증가가 불가피하다.

국가 재무제표도 부진하다. 국민연금의 투자운용수익 증가와 토지·건물 등 유형자산이 늘면서 국가 자산은 2490조2000억원으로 1년새 190조8000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연금충당부채 같은 비확정부채(지급시기·금액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갚아야 할 부채)와 국가채무 등 부채(1985조3000억원)가 241조6000억원 증가하면서 순자산은 504조9000억원으로 50조8000억원 줄었다.

(이미지=기획재정부)
지난해 재정 지표가 크게 나빠졌지만 정부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절대 부채 기준으로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치고 있다”며 “코로나 대응을 위해 전세계적으로 확장 재정을 펼치고 있는데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선진국은 지난해 GDP대비 13.3% 정도 재정적자가 전망되지만 우리나라는 3.1%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어도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우려 사항으로 지목됐다. 지난 2019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2020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805조2000억원으로 GDP 39.8% 수준이다.

2019~2023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도 2023년 국가채무는 GDP의 46.4%인 1061조3000억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재정건전성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는 2020~2024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2023년 국가채무를 1196조3000억원으로 전년 예상보다 100조원 이상 늘렸다. GDP 비중은 54.6%로 예측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가파른 국가채무 증가세에 우려를 나타냈다. 홍 부총리는 지난 2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가채무 비중은 어느 나라보다 건전하고 여력 있지만 늘어나는 속도나 국가 신용도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부는 코로나 위기 이후 과감한 세출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한편 비과세·감면 정비와 탈루소득 과세 강화 등 세입 기반을 확충해 재정을 관리해나갈 예정이다. 다만 잇단 재정 지출과 세수 감소 등 이중고를 겪는 가운데 보편적인 증세 없이 재정 수지 개선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재정준칙 법제화도 감감 무소식이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3%’ 재정준칙 산식을 적용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 제출했지만 확장 재정을 요구하는 여당과 재정준칙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야당 지적에 진척이 없다.

올해도 이미 1차 추경을 편성한데 이어 추가 지출 요구가 거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 경기 진작을 위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가 화두에 오를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계속하고 방역 상황이 보다 안정될 경우 본격 경기 진작책도 준비해나가겠다”며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시사하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확장 재정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견해와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재정의 적극 역할을 주문하는 쪽은 경제 회복 국면에서 재정이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러 국제기구들이 권고하는 것처럼 아직까지는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할 때”라며 “민간 소비 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벌써부터 재정의 역할을 거두면 안된다”라고 설명했다.

선심성 재정 정책은 경기 진작에 소용이 없다는 반론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기업부채 리스크도 큰데 재정을 불필요한 곳에 지출하면서 마지막 보루인 국가부채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공일자리 등에 재정을 지출하기 보단 민간 일자리와 소비·투자·수출 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규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