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세 도입①]한국식 은행세는 이렇게 다르다

by윤진섭 기자
2010.12.17 11:14:50

글로벌 금융위기 계기로 은행세 필요 부각
韓 자본유출입 일환으로 은행세 도입 결정

[이데일리 윤진섭 기자]  
 
정부가 은행에 대해 거시건전성부담금, 속칭 은행세 (Bank levy)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은행세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은행세는 은행에 부과하는 일종의 부담금이다. 백화점, 예식장처럼 교통유발 요인이 많은 시설에 대해 교통량 유발 정도에 따라 교통유발부담금을 부과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즉 은행세는 `금융위기가 불거질 경우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은행에 세금 형태로 일정 금액을 걷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자금으로 활용하겠다`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은행세 논의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서는 리먼브라더스 등 금융권이 투자한 모기지론이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부실화되면서 금융권이 연쇄 부도 위기를 겪는 등 붕괴 직전에 내몰렸다.

결국 미 행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연쇄 부도를 막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거액의 보너스 잔치를 벌이면서 `국민 세금으로 살려낸 은행들이, 자기들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거액의 보너스만 챙겼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 꺼낸 카드가 `은행세 부과 방침`이다. 그는 "국민에게 빚진 돈을 마지막 한 푼까지 거둬들이는 것은 대통령의 임무"라며 자산 500억달러 이상인 금융회사 50곳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 7000억달러 중 손실이 예상되는 1170억 달러를 세금을 매겨 걷겠다는 뜻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총자산에서 기본 자본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증 예금을 제외한 금액의 0.15%를 매년 세금으로 걷겠다고 했다.

미국이 이 같은 방침을 밝히자, 영국, 독일,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금융위기 당시 은행들의 구제 금융으로 사용된 비용을 회수하는 `징벌적` 성격의 과세라면, 유럽은 향후 위기 시 발생할 비용 부담에 대한 선제적 대응책 마련 성격의 은행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 은행세 도입안을 확정한 독일은 연간 10억유로 규모로 예상되는 세금을 은행의 유동성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 안정기금에 사용키로 했다.
 
물론 모든 나라가 은행세 도입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호주처럼 금융위기를 겪지 않은 나라들은 은행으로부터 세금을 걷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캐나다와 호주의 반대로 G20 차원에서 은행세 규범을 만들려던 미국, 유럽의 의지는 무산됐고, 결과적으로 각국이 사정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키로 최종 결론이 났다.
 
우리나라는 은행세 도입에 대해 G20 정상회의 때까지만 해도 `일단 지켜보자`는 `소극적` 자세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다행히 큰 사고를 치지 않아 공적자금이 들어가지 않아, 공적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한 은행세 도입 취지와는 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또 국내은행들이 특별 기여금 성격으로 2002년부터 25년간 25조원을 부담키로 한 상태여서, 미래를 대비한 펀드 조성이란 은행세의 또 다른 목적 역시 큰 상관이 없었다. 

우리 정부 입장에 전환점이 된 것인 급격한 외화변동성이 불거지면서다. 국내 경제가 살아나고, 해외에서 투기성 자금이 들어오자,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변동성이 커졌다. 우리 정부가 주목한 것은 은행세 도입을 통한 외화 차입 억제 효과다. 은행세가 도입되면 우리 은행들의 과도한 차입, 특히 외화차입을 억제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특히 모든 자금조달을 외화차입에 의존하는 외국은행 지점들에게 은행세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은행이 이자가 낮은 외화를 무분별하게 국내로 들여왔지만, 은행세가 도입되면 세금이 부과돼 은행의 외자 도입이 쉽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외은지점의 지나친 달러차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해왔던 정부로서는 사실상 꺼진 불이었던 은행세를 다시 살려내, 외화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