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회고록)亞 호랑이들, 中경제의 교과서

by정영효 기자
2007.09.17 14:16:00

韓등 亞 수출주도 전략 성공적..비용상승이 과제
한국의 친 재벌정책, 日 모방
亞경제 유연화..`제2의 IMF` 가능성 낮아

[이데일리 정영효기자] 중국은 한국과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이른바 `아시아의 호랑이들(Asian Tigers)`이 시도하고 완성한 경제 모델을 추구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의 거대한 경제 고릴라가 될 수 있었다. 외환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한 이들 국가에 남은 과제는 점증하는 생산 비용을 극복하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7일 출간한 회고록 `격동의 시대; 신세계에서의 모험(The Age of Turbulence ; Adventures in a New World)` `호랑이와 코끼리(The tigers and the elephant)'를 통해 동아시아 경제를 중국 경제의 교과서이자 전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이라고 칭송했다.

중국이 추구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모델이란 카리스마적 수출주도형 경제 전략을 말한다. 그는 특히 인도와 베트남 경제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를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세계사의 파고를 정면으로 맞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취한 성장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자유시장 경제의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이들 국가들이 취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채택한 전략은 단순하고도 효과적이었다고 봤다. 보호무역주의와 저렴한 노동력을 결합해 성장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 말레이시아의 모하마드 마하티르 총리 등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들이 정부 주도의 성장형 모델을 채택했던 것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국가별로 미세한 차이는 있었다면서, 한국은 일본을 모방해 재벌에 우호적인 지분을 제공했고, 대만은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산업을 강력하게 보호했다고 썼다.

그러나 정부 중심의 수출주도형 성장 전략은 경직성으로 인해 1970년대를 끝으로 정체 상태에 봉착했고, 1980년대 이후엔 무역 장벽을 낮춤으로써 정체 상태 타개를 시도하고 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노동시장과 높은 임금 상승률은 여전히 동아시아 경제의 장애물이지만 이 지역 특유의 교육열은 경쟁력을 재고시키고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의 경직성을 이완하는 데 성공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이를 통해 1997년 외환위기 수준의 금융위기가 닥치더라도 이들 국가가 훨씬 쉽게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호랑이`들의 성장은 미국과 유럽 등 나머지 세계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그린스펀 전 의장은 단호하게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국제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무역 장벽을 낮췄고, 각종 무역 협상들이 진행 중이며 교통·통신 수단이 발달했기 때문에 국제 무역의 규모 자체가 커가고 있다고 역설했다.

국제무역이 활발해 진 덕분에 일반 제조업은 동아시아 국가에 이어 남미 지역로 전이됐고 선진국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특화시킬 수 있었다. 실제 지난 반세기 동안 전세계 교역량 증가율은 세계 GDP 증가율을 크게 상회했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금융 및 보험업의 부가가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53년 3.0%에서 2006년 7.8%로 뛰어올랐다고 그는 전했다.



▲ 베트남 방문 당시의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베트남의 경제자유화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단 두차례 군사적 패배를 경험했으며, 이는 한국전 당시의 1·4후퇴와 베트남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베트남이 시장경제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미국이 개별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전쟁에서는 지지않게 됐다"고 촌평했다. 특히 지난해까지 미국의 금융사 씨티그룹과 메릴린치가 호치민시 증권거래소로부터 주식 매매거래 허가를 취득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코끼리`란 비유를 사용한 인도는 중국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중국이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수출주도형 전략을 채택한 것과는 달리 인도는 정보기술(IT) 산업을 육성했다.

고부가가치 산업 창출에 성공함으로써 인도의 전략은 성공적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한 인도가 일반 제조업 분야에서 취약성을 내비치는 것은 잠재적인 문제점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