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5번 먹통 '망신'‥금융허브 흔들리는 日

by김인경 기자
2020.10.04 14:48:40

[김인경의 亞!금융]
도쿄증권거래소 '시스템 오류'로 1일 증권거래 및 매매 중단
33조2000억원 거래기회 사라져.. 日 정부도 유감 표시
日 여당. 금융허브팀까지 만들고 규제완화 검토했지만
"최근 15년간 수차례 오류..거래도 안되는데 무슨 허브" 목소리도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홍콩 이후 아시아 금융허브를 꿈꿨는데 완전히 망신이다’

지난 1일 도쿄증시의 모든 주식거래가 하루 종일 중단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종목 거래는 물론, 닛케이225지수나 토픽스(TOPIX)지수도 산출되지 않았다. 도쿄증시를 운영하는 도쿄증권거래소는 ‘해킹 같은 외부 공격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다만 시스템을 구성하는 공유디스크 장치 중 하나가 고장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증시 관계자는 “15년간 5번이나 크고작은 사고가 났는데도 원인을 모른다는 건 또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소리”라며 홍콩을 뒤이을 아시아 금융허브 꿈에서 깨 기본부터 다시 쌓으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1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하루 내내 중단된 가운데, 한 투자자가 거래소 시황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AFP제공]
일본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7시께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시세정보가 갱신되지 않는 상황을 포착했다. 도쿄증권거래소도 즉각 수리에 나섰지만 백업시스템 조차 가동이 되지 않았다. 결국 개장 9시 이전 직전인 8시 39분께 3700개를 매매정지하고 수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오께까지 수리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도쿄증권거래소는 하루 장을 닫겠다고 밝혔다. 도쿄 증시가 시스템 장애로 온종일 거래 중단된 것은 현행 전산 시스템이 도입된 1999년 이후 처음이다.

도쿄증권거래소와 같은 시스템(후지쯔가 만든 ‘애로우헤드’)을 사용하는 나고야, 삿포로, 후쿠오카 증권거래소도 모두 거래를 중단해야만 했다. 선물 거래 위주라 다른 시스템을 사용하는 오사카증권거래소만 가동될 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내각 사이버 시큐리티 센터(NISC)’ 차원에서 조사에 돌입했다. 이번 사고로 3조엔(33조2000억원)의 거래 기회가 날아갔다는 게 NISC의 판단이다. 관방장관인 가토 가쓰노부 역시 도쿄증권거래소에 직접 유감을 표시했다. 미야하라 코이치로 도쿄증권거래소 사장과 시스템 운영사인 IT기업 후지쯔도 직접 사과를 했다. 다행히 다음날인 2일 도쿄증권거래소는 정상 가동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의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이미 예견됐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크고 작은 시스템 문제가 일본 증시의 주요 거래소인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연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에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아 오전 장의 거래가 중단됐다. 2006년에는 일본 인터넷 기업 ‘라이브도어’에 대한 조사로 매도 주문이 몰리자 전종목 거래를 닫았다. 결국 2010년 시스템을 바꿔 초고속 거래에 대비할 수 있는 현재 시스템인 ‘애로우헤드’를 도입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2012년에도 애로우헤드의 시세정보전달 서버가 문제를 일으키며 241개 종목의 주문에 이상이 발생했고 2년 전인 2018년에는 일본 메릴린치 증권에서 대량의 주문 정보를 초단타로 보내자 시스템 오류 화면이 뜨기도 했다. 이런 사고들이 계속 났지만 땜질처방으로 일관했던 게 이번 ‘도쿄증시쇼크’의 원인이란 얘기다.

와타나베 켄지 나고야공업대학 교수는 “소프트웨어에 버그가 생기거나 하드웨어에 고장이 나는 경우의 수까지 상정을 해놓고, 자동전환 장치까지 마련했어야 했다. 그게 기본”이라고 지적한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장관도 나서서 “디지털화나 온라인화는 편리성과 함께 안전성이 핵심”이라면서 “100% 안전하다는 확신을 할 수 있도록 (도쿄증권거래소의) 시스템 복원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번 사고로 도쿄증권거래소는 물론 일본 증시의 불확실성을 세계에 내비친 꼴이 됐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홍콩에 있던 글로벌 금융기관을 일본에 유치하는 게 현 자민당 정권의 청사진이었다. 실제로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금융허브 추진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해외펀드 법인세 경감과 금융인재 체류 편의성 상승, 외국계 기관의 심사 및 감독·검사를 영어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 등을 마련하고 당 차원에서 검토해왔다. 하지만 거래의 기본인 매매 조차 불안정한 시장에서 규제를 완화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 외국계 증권사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해외 투자자들 모두 황당한 얼굴로 일본 시장을 쳐다봤다. 일본 시장의 명성이 추락했다”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도쿄가 홍콩 이후 금융허브 유치를 노리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