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철우 기자
2007.07.04 11:37:23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방송 10여분 전 PD가 선발 오더를 들고 왔습니다. 한참을 별 생각 없이 적어내려가다 뭔가 어색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히로시마 7번 우익수 자리에 노장 투수 사사오카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마...' PD에게 확인해보니 틀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죠. '위장 오더.' 상대팀 선발을 확인하고 선수를 바꾸겠다는 뜻이죠.
결국 히로시마는 주니치 선발 오더에 우완 아사쿠라가 선발 등판한 것을 확인한 뒤 1회말 수비부터 모리가사를 투입해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릅니다.
'위장 오더'는 선발 투수 예고를 하지 않는 센트럴리그서도 흔한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일본식'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히로시마의 감독이 누구냐'하는 점입니다. 히로시마는 마티 브라운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죠. 현역시절 히로시마에서 잠시 뛴 적이 있으며 미국 트리플A 감독을 하다 지난해부터 팀을 맡았습니다.
브라운 감독은 2004년 자신의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 아메리카'로부터 '올해의 감독'으로 뽑혔던 인물입니다. 미국에서도 꽤 야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으로 여겨도 무방한 이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목표점은 메이저리그 감독이라고 합니다.
승부처에서 '내야수 5명' 투입, '의도된 퇴장' 등 기행이 많은 브라운 감독이지만 그의 이력과 위장 오더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일본 언론은 조용합니다. 인터넷 판 기사에서는 그 부분에 전혀 언급이 없어 현재로선 브라운 감독의 속내를 알기 힘듭니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프로야구에선 있어선 안될 일' 이라던지 '고등학교 야구를 보는 듯 했다' '일본식 야구의 잔재'라며 시끄럽지 않았을까요.
지난달 일본의 인터리그(교류전)가 한참일땐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스포츠 신문 칼럼니스트의 글이었는데 지바 롯데와 유독 롯데에 약했던 요미우리의 경기를 앞두고 "미국식 야구의 바비 밸런타인 감독과 일본식 야구의 하라 감독 대결"이라는 주제였습니다.
그 칼럼니스트의 미국식이란 밸런타인 감독의 '매일 바뀌는 선발 라인업'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반면 거의 라인업이 바뀌지 않는 하라 감독의 야구는 일본식이라고 표현했던 거죠.
우리는 대부분 그와 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왠지 변칙과 머릿싸움은 일본야구와 어울린다는 편견이 있으니까요. 정작 일본에선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브라운 감독이나 밸런타인 감독이 하는 야구라고 그것이 메이저리그 식은 아닐겁니다. 메이저리그선 그같은 파격 운영은 찾아보기 힘들죠.
중요한건 '~ ~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두 감독 모두 이기기 위해 정해진 룰 안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닐까요.
맡고 있는 팀 사정에 자신의 야구 철학을 더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나온 나름의 해결책일 겁니다. 굳이 방식을 나누자면 '이기는(혹은 이기고 싶은) 야구'겠죠.
야구는 유기적이어야 합니다. 특히 감독의 사고는 유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내키지 않아도,폼 나지 않아도 할수 있어야 하는 것이 승부의 세계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 보여지는 방식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OO야구'는 이렇고 'ㅁㅁ야구'는 저런 장,단점이 있다"는 편견 속에 갇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관념의 벽이 야구를 즐기는데 방해가 되고 있는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