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경민 기자
2013.05.23 11:30:02
[위험산업]중동산 저가제품과 셰일가스의 위협
[이데일리 김경민 기자] 석유화학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선전했던 업종 중 하나였다. 중국의 강력한 경기 부양 조치와 신흥 공업 국가들의 수요 증가와 전방산업인 IT와 자동차 산업의 선전으로 오히려 호기를 맞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더딘데다 중국의 자급률 상승과 중동산 저가제품 공급 등으로 업황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데일리가 4월 진행한 17회 SRE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최근 신용위험이 크게 상승한 산업으로 응답자 109명 중 11%에 해당하는 12명이 석유화학산업
을 지목했다. 역대 SRE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위험산업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 SRE 자문위원은 “신용위험이 절대적으로 크진 않지만 최근 위험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석유화학 산업은 원유정제 과정에서 분리되는 나프타를 기초원료로 에틸렌과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의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기초유분이 중합, 화학반응을 거치면 합성수지, 합성섬유원료, 합성고무, 기타 화공약품 등 유도제품이 된다. 최근 산유국에선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에탄가스를 기초유분의 원료로 사용하긴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대부분 나프타를 쓰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은 사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기초 원자재다. 생활용품과 산업용품, 건축자재 등의 소재는 물론 천연자원의 대체품으로도 쓰인다. 전자와 자동차, 건설, 섬유 등 거의 모든 산업이 전방산업에 해당한다. 시장 규모도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전후방 산업과의 연계는 물론 막대한 설비와 대규모 자본투자가 필요해 진입 장벽은 높다. 그러다 보니 설비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단위 설비 규모가 커질수록 단위 생산당 원재료와 에너지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의 투자를 유지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어 늘 대규모 투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 세계 석유화학 기업들이 활발하게 설비 투자에 나서고 있어 국내 기업들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1년 기준 약 792만톤으로,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5% 수준이다.
석유화학은 기초소재 산업이다 보니 전방산업의 업황과 경기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출 물량이 절반 이상 차지하는 만큼 세계 경기에도 민감하다. 지난해부터 석유화학 업황이 꺾이고 있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다. 실제로 유로존 재정위기가 여전한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도 회복세가 지지부진하면서 수요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세계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중국이 단기간내 고성장에 따른 후유증으로 주춤하면서 타격이 크다. 반면 생산은 과잉상태다. 1990년대 대규모 설비투자로 생산량은 이미 내수시장을 넘어섰으며, 생산물량의 약 5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중국이 수출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나프타는 국내 생산에 따른 부족분을, 원유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기에 중동 국가들이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악재다. 중동 국가들은 오일머니를 앞세워 앞다퉈 에탄가스 생산설비를 증설하면서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중동 국가의 증설 효과는 에틸렌 계열 합성수지 제품 위주로 나타나고 있다. 중동산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과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2008년 20.8%와 17.7%에서 작년엔 54.1%와 43.5%로 급등했다. 한국산 제품보다 가격이 10%가량 싸 중국내 한국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에탄가스는 나프타보다 생산원가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셰일가스 개발과 함께 에틸렌계 제품군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 미국도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다. 셰일가스는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층인 셰일층에 존재하는 천연가스를 말한다. 북미지역의 셰일가스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미국은 최근 석유화학 산업에서 다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실제로 다우케미칼 등 미국 주요 화학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직전 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채산성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미국 화학기업들은 셰일가스 관련 생산 비중을 오는 2016년까지 68%로 확대할 예정이어서 국내 기업들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의 수입은 줄고 있는데 중동과 북미산 저가제품까지 경쟁은 더 치열해지면 SRE서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성이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 특히 덩치가 작은 기업들은 충격파가 더 크다.
노지현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2000년 초반부터 이어진 장기 호황 국면에서 자체 재무역량을 키워왔고, 꾸준한 사업확대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불안정한 국제유가와 경쟁국의 설비증설 등으로 영업환경이 좋지 않지만 아직 개별기업의 신용위험으로 확대될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북미지역의 중기적인 설비증설을 고려하면 경기 하강 속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면서 “앞으로 몇 년간 석유화학산업은 환경 변화와 개별기업의 채무상환 능력 변화에 대한 보다 높은 수준의 모니터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송종휴 한국기업평가 연구원도 “2011년 하반기 이후 영업수익성 약화 기조와 확대된 재무부담 등의 이슈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면서 “대체원료 기반 제품과의 가격 경쟁 심화로 국내업체들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