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 D-3)곳곳 마찰·.."법 지키자니 파업에 죽을판"

by김상욱 기자
2010.06.28 11:24:02

타임오프 앞두고 기아차 노사 첨예한 대립..쌍용차는 합의
조선. 금융도 해법 못 찾아...전자 유화업계 "영향 적다"

[이데일리 산업1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기아자동차 공장. 줄지어 늘어선 자동차 프레임 사이로 바쁜 손놀림들이 이어진다. 엔진이 올라가고 각종 부품들이 부착되면서 자동차의 모습이 완성되어 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눈 앞에 나타난 자동차는 바로 K5.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현대차 쏘나타를 추월한 바로 그 모델이다. `형만한 아우없다`는 격언을 머쓱하게 만들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웃음꽃이 피어나야 할 기아차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다. 생산현장의 분위기도 어수선하기만 하다. 일선 영업점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금처럼 기아차가 잘 팔렸던 시절이 있었나"라는 물음이 나올 만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아차 화성공장에서는 지금 하루 700여대의 K5가 생산된다. 주간 2교대로 생산해내는 물량이다. 하지만 밀려있는 주문은 1만 6000여대에 달한다. 조금 특별한 옵션을 주문하면 출고 기일을 장담받기 어려울 정도다.

특근이 이뤄지면 생산물량은 두배 가량 늘어난다. 하지만 기아차는 6월 들어 특근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노조 집행부는 파업 찬성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가결. 자칫하면 `20년 연속 파업`이라는 기록이 이어질 수 있다.

모처럼 기회를 잡아 잘 나가고 있는 기아차(000270)가 왜 파업 일보 직전 상황까지 몰렸을까.
 
올해 임단협 협의과정에서 내달 1일부터 시작되는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를 둘러싼 노사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종별로 온도차는 있지만 기아차 사례에서 보듯 시행을 앞둔 `타임오프제`는 산업계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타임오프제 시행을 놓고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기아차 노조는 타임오프제가 시행되면 현재 181명인 기아차 전임자 수를 18명으로 줄여야 한다.
 
노조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특근 거부는 물론 파업을 강행하기로 했다. 지난 25일에는 65%의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다.

그동안 기아차 노조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올해 임단협 핵심사안으로 사측에 제시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타임오프제와 관련된 사안은 임단협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불법을 인정하라는 것"이라는 회사측과 "밀릴 수 없다"는 노조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기아차 노조의 파업 결의에 대한 업계의 시각은 곱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들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고 있는 기아차이기에 이번 파업 결의로 자칫 그 성장세가 꺾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장에서도 "'만년 2위'에서 모처럼 1위에 오를 기회를 잡았는데 파업으로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면 어떡하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아차와는 반대로 쌍용차의 경우 노사가 타임오프제 시행에 대해 합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쌍용차 노사는 지난달 19일 현재 노조 전임자 39명 중 타임오프 대상인 7명에게만 임금을 지급하고 나머지 노조간부는 노조가 급여를 지급키로 하는 안에 합의했다. 사실상 법대로 타임오프제를 시행키로 한 셈이다.



쌍용차는 지난해 옥쇄파업 등으로 극심한 노사갈등을 빚었다. 장기간 파업으로 인해 회사의 경영상황은 물론 쌍용차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냉정하게 변했다. 하지만 회사가 법정관리로 넘어간 상황에서 노사의 대립국면이 지속될 경우 공멸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하며 어려운 합의에 도달했다.

산업계에서는 자동차, 특히 기아차 노조의 사례가 향후 타임오프제 성공여부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업계에 노동계와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며 "타임오프제에 강하게 반발하는 기아차와 법대로 시행에 합의한 쌍용차의 사례중 어느 것이 타임오프제로 인한 후폭풍을 헤쳐나갈 해법이 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역시 타임오프제 시행을 며칠 앞둔 지금까지도 노사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갈등을 빚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28일 18번째 임단협 협상을 진행했지만, 타협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노조는 법 시행 이전에 임단협을 마무리 짓고, 2년 간의 유예기간 적용을 받겠다는 입장인 반면 사측에선 개정된 법에 따라 전임자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27명의 전임자를 두고 있다. 개정법에 따라 11명까지 전임자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노조는 2년간 유예 기간을 적용 받아 당분간 27명의 전임자 수를 유지하겠다며 지난 15일부터 대의원 68명이 부분 파업을 벌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와 노조 모두 지금 교섭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최대한 대화를 통해 최악의 상황은 도래하지 않게 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명의 노조전임자를 두고 있는 한진중공업도 개정된 법에 따라 5명까지 전임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 특히 기술본부의 분사와 맞물려 사측과 극한대립을 보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조는 지난 25일부터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결의에 따라 부분 파업에 들어갔다.
 
금융권도 타임오프제 시행을 놓고 몸살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무급전임자의 근로조건 등의 쟁점을 놓고 그동안 3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측은 `타임오프 구간별 최대 한도 인원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조합원수에 비례해 유급전임자수를 구체적으로 확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노조측은 유급 전임자 수를 노동부 고시 기준에 따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측은 개별 은행 조합원 수에 비례해 전임자 수를 결정하자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반면 전자업계는 노사가 별다른 쟁의행위 없이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LG전자는 LG전자는 6월 말까지 노경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현재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현재 협의가 원만히 진행되고 있다"며 "큰 문제 없이 합의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