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6.16 12:35:00
‘강적’(22일 개봉)은 전형적인 버디 무비(두 남자 배우가 콤비로 출연하는 영화)의 틀을 지녔다. 삶의 벼랑에서 적으로 만난 두 사람이 우정을 느끼며 운명을 함께 하는 이야기는 많은 영화에서 조금씩 다른 정서로 채색되며 변주되어왔다.
이 영화의 기본 정서는 냉소적 감상주의다. 언뜻 ‘쿨’하게 들리는 극중 냉소적 대사들 속에는 사실 짙은 자기연민이 깔려 있다. “사람도 동물 아닌가” “인간은 다 억울해” “세상이 원래 시궁창이야” “인생 뭐(별 것) 없어” 등 러닝 타임 내내 쏟아내는 삶에 대한 촌평 같은 대사들은 냉소라기보다 푸념과 불평에 더 가깝다.
냉소적 감상주의는 ‘강적’의 캐릭터를 조각하는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인물들은 목소리 높여 악다구니를 쓴다. 감독은 그 많은 조-단역까지 일일이 방점을 찍어가며 다 살려내서 세상에 대해 내쏘도록 만든다. 그러나 하나의 작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액센트가 무한정한 것은 아니다. ‘강적’은 모든 곳에 힘을 주는 바람에 정작 영화 자체는 힘을 받지 못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성우와 동료 형사들의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처럼 잘 묘사된 부분도 발견되지만, 정작 핵심이 되어야 할 성우와 수현의 관계는 화학적 반응을 이뤄내지 못해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중심 줄거리 사이사이 산발적으로 돌출한 액세서리들이 주인공들의 내면 주위에서 원심력으로 작용하면서 관객을 몰입자가 아닌 구경꾼으로 만든다. 버디 무비를 보는 관객이 두 주인공의 심리적 교류에 공감할 수 없다면 다른 미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박중훈과 천정명은 첫 장면부터 라스트 신까지 내내 비틀고 쥐어짜내야 하는 배역을 맡아 쉽지 않은 승부를 했다. 몸에 꼭 맞는 최적의 형사 연기를 보여줬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나 ‘투캅스’에서와는 달리, ‘강적’의 박중훈은 인물 속에 발을 하나만 집어넣은 것 같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노련미가 돋보이지만, 상대의 행동이나 대사를 받아주는 반응 연기에서 관성적인 모습이 보인다.
여린 얼굴로 거친 인물 연기를 해낸 천정명은 특유의 매력이 있지만 아직은 한 영화를 책임질 수 있는 힘이 부족한 듯하다. 무게를 잔뜩 실은 대사 처리에서조차 종종 캐릭터의 위력을 살려내지 못한 그는 성실하지만 왜소한 연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