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영곤 기자
2005.08.30 12:20:00
[이데일리 김영곤 칼럼니스트] 증권시장은 92년 하반기를 저점으로해서 새로운 상승기에 들어서게된다.
그것은 우리가 단순한 경험치에 의거해서 흔히 쉽게 말하듯 5~6년 호황기와 3~4년 침체기의 순환 공식을 대입해서 내린 결론이 아니다. 그만큼 증시는 반등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성숙했다고 믿는 까닭에서다.
증시는 80년대 중반이후 격동적인 소용돌이를 지나쳐 오면서 스스로도 느끼지도, 몰라볼만큼으로 부쩍 성숙해서 어느때보다 경기선행지표로써 가능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기때문이다.
92년께만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바와는 달리 세계 경기는 거의 눈에 띌만큼 호전의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경기가 그토록 일반적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92년께 답답한 횡보현상을 보인 것 자체가 하나의 저점을 통과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였나 생각도 든다.
93년에 들어서면서 경기는 조금씩 회복여추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만큼 회복이 더디었던 것은 80년대의 호황이 기간도 길었을 뿐더러 폭이 컸기때문이 아니였을까 단순하게 생각해 볼수도 있는데 여하튼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면서 투자여건이 성숙하게 되고 곧 이는 세계 경제의 성장세로 가시화된다.
이미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이 세계경제는 93년에는 2% 정도의 낮은 성장률을 보일 것이나 94년에는 이보다 뚜렷하게 웃도는 3%선, 아니면 더 낙관적으로 봤을때는 3.5%선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치고 있었다.
세계경제의 고무적인 성장회복세에 따라 주요국의 증시도 92년을 기점으로해서 대부분 상승세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직접적인 경기부양책의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저금리 여건에서 직접적으로 상대적인 고수익성을 따져보거나 아니면 간접 우회적으로 저금리에 의한 투자여건의 호전을 기대해서거나 주식선취매를 유발할 여건이 되어있다고 볼수있다.
우리나라는 세계경기의 동향에 한발 늦게 반응했다. 92년 8월에 하락세가 멈춰지며 바닥세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으나 그러한 일반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주기회복세에 전혀 힘이 붙지를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6공1기 정부의 경제 실패가 깊은 상처를 남겼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깊은 상처는 그만큼 회복기간이 길수밖에 없으니까.
경제를 요란스러운 과열화로 부채질하다가 갑작스럽게 안정화로 선회하게 되니 그것은 곧 급가속후 급제동으로 에어백이 터지는 충격을 준셈이 아닌가. 또 그것은 흔히 말하는 소프트 랜딩일 수 없다. 그들 스스로는 연착륙을 시도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곧 동체착륙과도 같은 위험 천만인 것이어서 경제가 급격히 또 과도하게 냉각, 침체 됐음을 반영한 것이 아니겠는가.
또 93년에 들어와서도 증시의 주가는 전반적인 여건을 반영, 안정적인 상향 추세로 가기보다 단기적인 급등락을 자주 반복해서 시장의 불안정을 반영하기도하고 그만큼 신규투자의 참가를 억제했다.
왜 그처럼 92년 이후에도 증시는 안정성을 갖지 못했는가. 그것은 아마도 새로운 정부의 경제운용 미숙이 악재로 작용했기때문이었던 것같다.
6공2기정부는 문민정부로 스스로 명명했는데 이 새로운 정부는 또 다른 면으로 투자불안정을 야기했다. 이 정부는 정책을 펴나가는 데 있어 상황과 국면에 맞는 정도를 펴나가기보다는 즉흥적 인기위주의 한건주의 조치를 곧잘 취해서 그 장단에 따라가기가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면에 있어 안정회복의 기조를 굳건히 하는 보약위주의 체력관리를 해나가야 할 때 갑작스러운 원기왕성으로 펄펄 날도록하는 듯 마치 흥분제를 쓰듯 부양책을 과다투약해서 체력의 난조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든 그런 악조건속에서도 증시 주가는 난조를 그대로 반영하면서 회복세를 굳혀 나갔다.
사실 그렇게 증시가 상황에 민감한 것부터 증시의 성숙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부가 정책을 마치 조자룡 헌칼쓰듯 아니면 어린애가 칼 쥐고 놀듯 휘둘러 경제기조를 오히려 난조로 끌고간다고 해도 증시는 이제 이를 수용하면서 이를 조롱하듯 반영하면서 선행기능를 강화해 간다.
그것은 아무리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것과도 같다고 할까. 지나친 비약, 곡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