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도 놀란 ‘깜깜이 공매도’…“기울어진 운동장 바꿔야”
by최훈길 기자
2023.10.15 17:08:27
BNP파리바·HSBC, 범죄 알고도 장기간 몰래 불법공매도
엄단하려면 사후제재 넘어 실효성 있는 사전대책 중요
5만 청원 “전산시스템 도입, 무기한 외인 공매도 금지”
정무위 “내달부터 대책 논의”, 관건은 ‘신중론’ 금융위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금융감독원이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대규모 불법 공매도를 최초 적발하면서 후속대책 논의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은밀한 수법으로 장기간 자행한 ‘깜깜이 불법 공매도’를 엄단하려면 사후제재뿐만 아니라 이를 사전에 차단할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 올해 1~8월 불법 공매도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건수는 45건, 과태료·과징금 부과 금액 합계는 107억475만원이었다. 역대 최다 제재 건수이자 역대 최대 과태료·과징금이다. 외국계 금융사가 전체 과태료·과징금 부과액의 92%를 차지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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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금감원이 발표한 ‘글로벌 IB의 대규모 불법 공매도 적발’ 내용의 핵심은 장기간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불법 공매도가 최초 적발된 것이다. 적발된 글로벌 투자은행 2곳은 BNP파리바와 HSBC다. 2021년 9월부터 작년 5월까지 국내 101개 종목(BNP파리바 기준)에 대한 불법 공매도로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김정태 금감원 부원장보는 “알면서도 고의적이고 관행적으로 불법 공매도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관련한 금감원의 대책은 크게 ‘엄벌’, ‘조사 확대’, ‘검사 강화’ 등 3가지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 역대 최대 과징금 부과를 건의할 예정이다. 주요 글로벌 IB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고 국내 증권사에 대한 검사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승우 조사2국장은 “국내 증권사는 계열사 관계, 수수료 수입 등 이해관계로 위탁자인 글로벌 IB의 위법을 묵인할 가능성이 있다”며 “면밀히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같은 대책만으론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우선 ‘깜깜이 공매도’ 문제다. 이처럼 외국계 금융사가 2021년부터 불법 공매도를 해도 현 전자시스템상 실시간 포착을 못한다. 불법 공매도 타깃이 된 105종목도 비공개다. 지난해 6월 이복현 원장 취임 후 공매도조사팀이 신설돼 ‘불법 공매도와의 전쟁’에 나섰지만, 팀 인원은 고작 8명이다. 인력 보강, 전산시스템 도입 없이는 실시간 적발이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게다가 최근엔 장기간에 걸친 공매도도 늘어 개인 투자자들 고민이 커졌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90일 이상 공매도 목적으로 주식을 빌린 곳이 전체 기관투자자(85개) 중 72곳(85%)에 달했다. 대차 종목은 공매도가 허용된 350개 전 종목이었다. 지난 11일 국감에서 당국 예측을 뛰어넘는 이 수치가 공개되자,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의원들도 놀랐다. 무기한 공매도는 주가 하락, 불법 공매도, 시세조종으로 악용될 수 있어서다.
이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은 사후제재뿐 아니라 사전에 차단할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4일 ‘증권시장의 안정성 및 공정성 유지를 위한 공매도 제도 개선에 관한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등록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5만명 동의를 달성했다. 청원에는 무차입·무기한 공매도 사전차단을 위한 증권거래 시스템 도입, 기관·외국인의 상환기간 제한 등이 담겼다. 올해 불법 공매도에 사상 최대 과태료·과징금(107억원)이 부과됐고, 과태료·과징금의 92%는 외국계 금융사가 차지했다.
백혜련 정무위원장(민주당)은 통화에서 “국감 이후 내달부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공매도 청원 내용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경협·박용진·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관련 공매도 제도개선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강훈식 의원도 준비 중이다.
관련해 정무위 여당 간사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해야 한다”며 “방식은 법 개정보다는 정부 차원의 대책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태 금감원 부원장보는 브리핑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개선을 꾸준히 하려고 하고 있고, 국민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공매도 제도 주무부처인 금융위 입장이다. 김주현 위원장은 지난 11일 국감에서 개인·기관·외국인의 담보비율 일원화, 수기관리에서 벗어난 전산시스템 도입에 대해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증시 현실 등을 거론하면서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전 이사는 “정부가 특권, 불공정에 칼을 뽑았는데 왜 자본시장의 불공정 공매도, 외국계 슈퍼리치 등은 치외법권인가”라며 “금융당국이 불통에서 벗어나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제도개선에 나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7일에는 금감원 국감, 27일에는 금융위·금감원 종합국감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