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28. 英TV vs美디지털 공룡의 싸움…승자는?

by함정선 기자
2018.02.01 09:13:01

영국 드라마 ‘셜록’ 스틸 컷(출처=BBC)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드라마 ‘닥터후’와 ‘셜록’, ‘스킨스’,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방송 ‘네이키드 쉐프’ 등 영국에서 만들고 세계적으로 히트한 콘텐츠들은 대부분 영국공영방송 BBC나 민영 ITV, Channel 4 등 지상파 방송국TV채널을 통해 방송된 작품들이죠.

방송사들은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거나 아니면 외부 제작사와 합작하는 식으로 만들어 방송국TV 채널을 통해 방송하고요. 공영방송인 BBC의 경우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민영방송은 일반 기업으로부터 프로그램 앞뒤에 광고를 해주는 대가로 제작비를 협찬 받아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그래서 이들 방송국들은 연말이면 주요 프로그램 출연진들과 광고를 협찬하는 기업 간부들을 모아 파티를 열면서 다음 해의 광고 협찬을 부탁하곤 하죠.

영국 TV 콘텐츠는 특히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부문에서 독특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작품성 등으로 영국 문화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또한 영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죠. 영국으로 오는 관광객들 가운데 영국 드라마나 방송 콘텐츠에서 본 국회의사당(빅벤), 버킹엄궁전, 트라팔가광장, 요리사 제이머 올리버가 자주 간다던 런던 보로우마켓 등을 가기 위해 영국을 찾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영국 TV 미디어산업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바로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미국 디지털 공룡들 때문입니다. 콘텐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스토리 라인, 대규모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유통채널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들 디지털 공룡들은 인터넷이라는 채널을 통해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전 세계 유저들을 고객으로 확보해놓고 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 아마존 등은 대규모 예산을 들여 자체적으로 흥미로운 콘텐츠까지 생산하죠

TV 채널은 여전히 방송국들이 편성권을 쥐고 있습니다. 방송국들이 편성하는대로 시청자들은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기다렸다가 원하는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죠. 하지만 넷플릭스, 아마존 등은 구독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기존 콘텐츠를 대규모로 확보해 소비자의 선택권도 훨씬 넓어졌죠. 또한 TV라는 고정된 도구와 장소의 제약에서 벗어나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서 어디서든 선택한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편리성을 높였죠.



인터넷 채널과 비교해 여러모로 수동적이고 불편한 TV 채널을 시청자들이 고수하게 만들려면 결국은 온라인 공룡들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고퀄리티 콘텐츠 생산이 관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창조해내는 인력 확보와 스토리를 화면에 생생하게 구현해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작비 확보가 필수입니다. 그런데 영국 방송국이나 제작사 등은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예산 규모에서 미국 디지털 공룡들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영국 최대 방송사 BBC의 매년 콘텐츠 제작 예산은 40억파운드(약 5조7780억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미국 디지털기업 가운데 넷플릭스 한곳의 콘텐츠 제작 예산이 60억~80억파운드에 이르죠.

최근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21세기폭스의 TV와 영화 부문을 미국 디즈니에 넘긴 것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미국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디즈니 입장에서는 폭스를 인수해 보유 콘텐츠를 늘려 디지털 공룡들과 경쟁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고요. 머독은 폭스의 영화와 TV부문을 디즈니에 넘기고 자신이 건설한 미디어제국의 사업 초창기에 집중했던 뉴스와 스포츠 방송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머독의 폭스 영화 및 TV 부문 매각은 결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전통적인 미디어가 인터넷 공룡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머독이 인터넷 공룡들의 등장으로 바뀐 미디어 환경에서 나름 선제적으로 현명하게 대처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당장 영국만 봐도 온라인 콘텐츠 유료 가입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영국 국민 가운데 넷플릭스와 아마존 등의 인터넷 주문형비디오서비스(VODS) 유료 이용자는 1670만명에 달해 처음으로 스카이와 BT, 버진미디어 등 영국 유료 TV 채널 시청자(1680만명) 수와 맞먹을 전망입니다.

이같은 추세 등을 바탕으로 영국에서는 결국은 TV 채널은 뉴스나 스포츠 등 라이브 콘텐츠를 중계 방송하는 데 집중하고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능 콘텐츠 등은 디지털 공룡들이 담당하는 것으로 양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머독의 판단이 미디어 시장을 정확히 예측한 선제적인 행보인지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