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30시간 법칙’ 무너뜨린 김무성의 홀로서기 실패

by김성곤 기자
2016.08.14 22:09:43

‘무대’ 김무성, 대표 재직 중 ‘30시간 법칙’ 조롱 시달려
7월 14일 당 대표 취임 2주년, 사실상 대선출정식
8.9 전대 전후로 민생투어…마이웨이 선언 속 과감행보
반기문 대망론 공고화 속 대선주자 존재감 희미해져

(사진=김무성 페이스북)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직 애칭만이 있을 뿐입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이야기입니다. 여야 국회의원, 보좌진, 정치부 기자들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사석에서는 대부분 김무성을 ‘무대’라고 부릅니다. ‘무대’는 김무성 대장의 약자입니다. 그러나 선 굵은 남성적 정치가 매력인 김무성은 오랜동안 ‘덩치값도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이른바 ‘30시간의 법칙’입니다. 김무성이 특정 이슈에서 큰 소리를 치고도 박근혜 대통령이 반발하면 불과 30시간을 채 버티지 못한다는 조소 섞인 비아냥입니다. ‘무대’가 영광스러운 별명이라면 ‘30시간의 법칙’은 치욕적인 꼬리표입니다. 실제 상하이 개헌발언, 국회법 개정안 파동, 총선 살생부와 옥쇄파동 등이 대표적입니다. 김무성이 달라진 것은 7월 14일입니다. 그날 이후 홀로서기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 결과를 보면 대 실패로 끝난 듯해 보입니다.

◇울분에 찬 김무성의 토로 “병신 소리 들어가며 참은 이유는?”

“‘집권 여당 대표로서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안된다’는 생각에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참고 참았다. 제가 힘이 없고 용기가 없어 몰매를 맞았겠느냐. ‘내가 당 대표로 있는 한 분열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점 잡힌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도 참았다.”(7월 14일 당 대표 취임 2주년 행사장)

김무성은 울분을 토했습니다. ‘30시간의 법칙’이라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수모를 왜 감내했는지 폭포수같은 말을 쏟아냈습니다. 총선참패로 “죄인은 유구무언”이라며 말을 아끼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야의 유력 차기주자 중 가장 먼저 대선출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행사 내내 “김무성”이라는 연호가 끊이지 않으면서 사실상 대선출정식과도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진정한 농부는 아무리 홍수가 나고 가뭄이 오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하늘을 탓하지도 않고, 오로지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믿고, 다음 농사를 준비한다. 제가 선봉에 서겠다. 우리가 변화의 주체가 되고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혁명 동지가 되자. 다시 한번 무성을 믿고 힘을 모아달라. 여야 간 골육상쟁과 같은 극한 대립의 정치를 끝내야 할 때가 됐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 체계를 바꿔야 한다.”

김무성은 비박계 수장으로 분류되지만 사실 ‘원조친박’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17대 국회 때 사무총장으로 발탁한 이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린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2007년 대선 이듬해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과정에서 탈락하며 ‘친박학살’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박 대통령의 ‘살아서 돌아오라’는 유명한 말은 이때 나온 것입니다.

다만 MB 정부 아래서는 두사람간 갈등의 골이 커집니다. 2009년 김무성의 원내대표 추대가 박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된 것은 물론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정국 때는 완전히 갈라섭니다. 박 대통령은 “친박에 좌장이 없다”며 퇴출을 선언했습니다. 김무성은 2012년 친박이 주도한 19대 총선에서도 탈락했습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는 총괄선대본부장을 맡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거리는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줄곧 비박으로 분류됐습니다. 한마디로 애증의 10여년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김무성, 朴대통령에 연일 무력시위

(사진=김무성 페이스북)
‘30시간의 법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김무성은 본격적인 마이웨이를 선언합니다. 대권행보의 일환으로 나선 전국 민심투어를 통해서입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동안은 과연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습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께서 특정 지역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8월 3일 광주 5.18 국립묘지 참배 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걸 다 독점하는 그런 구조다. 민주주의에서 민의를 대변하는 국민을 위한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왕을 뽑는 게 한국 대통령 선거다.”(4일 전남 여수 방문 후)

“지금 우리 경제가 크게 어렵고 청년실업은 해소되지 않으며 양극화도 심하다. 지금 대한민국에 김대중 대통령님의 지도력이 필요합니다.”(10일 전남 신안군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하의도 생가 방문 후)

“대선에서 이기는 정당은 ‘우린 세상 다 얻었다’ 기고만장하고, 진 정당은 ‘망했다’고 대성통곡한다. 이대로 가면 나라 망한다. 대통령 권력을 나눠야 한다. 장관 한 사람이 대통령한테 등보이면 안 된다 해서 뒷걸음질로 나오다가 카펫에 걸려 넘어진 적도 있다. 이건 뭐 코미디다.”(11일 전남 영광 원불교 영산성지 방문 후)

“(친박 강경파는) 뒤늦게 친박 진영에 붙은 놈들이다. 최근에 와서 붙은 놈들이 대표보고 그렇게 모욕적으로 발언하고 달라들고 하는 거 보면 참 기가 막히지. ‘권력을 우리끼리 나눠먹는 것도 부족한데 당신까지 오면 우리 먹을 게 없지 않냐, 오지 마라’ 이 말이거든. 나쁜 놈들이지.”(12일 TV조선 인터뷰)

◇8.9 전대 친박 압승…김무성 대선주자 아웃?

김무성의 위험한 도박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정치생명을 걸고 올인한 전대 결과가 최악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비박계 후보의 단일화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적극 지지했지만 결과는 예상밖이었습니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이번 전대 결과로 김무성의 대권행보는 사실상 아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정현 대표의 선출로 마무리된 새누리당의 전대 결과는 반기문 대망론을 공고화시키면서 사실상 비박주자들의 대몰락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무성이 받은 타격은 정치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 한들 내년 대선국면에서 김무성이 새누리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기보다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무성의 남은 선택지도 불투명해보입니다. 김무성은 여권 차기 주자 중 가장 공세적으로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선언했습니다. ‘모 아니면 도’의 전략이었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4.13 총선 참패 이후 김무성은 정치적으로 낭인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킹을 포기하고 킹메이커로 나서는 게 현실적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8.9 전대를 기점으로 정치적 부상을 노렸지만 상황은 더 암울해졌습니다.

김무성의 희박한 가능성은 단 하나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판에서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입니다. 과거 3당합당이나 DJP연대와 같은 이질적인 정치세력의 합종연횡이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권력분점을 기반으로 한 개헌이 이뤄지고 새누리당의 분열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달콤한 열매가 김무성의 몫이 될 지는 의문입니다.

정치인 김무성에게 실낱같은 기회가 찾아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