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九龍列傳)승자와 패자 -上

by김병수 기자
2009.09.14 11:42:09

영귀검황을 둘러싼 암투

[이데일리 김병수기자] 최근 금융권에 적지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정권교체와 함께 급부상한 우리금융(053000) 출신과 새 정권에 기여한 인사들이 초기 금융권 판세를 이끌어왔지만, 집권 2년을 앞둔 상황에서 KB금융(105560)지주 문제로 또 한차례 요동을 치고 있다. 지난 해 6월, 금융계 파워엘리트 9인(九龍)의 미묘한 차이를 가상의 무협소설로 풀어냈던데 이어, 같은 형식으로 최근의 상황을 각색해 봤다.

무림에 가공할만한 천재지변이 일어난지도 어느 새 1년반이 훌쩍 지났다.

민초들의 연판장 사건으로 물러난 전임 천자(天子)는 화를 못이겨 이엉부 바위에서 뛰어내렸고, 그의 후원자 역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무림을 등졌다.

그 동안 천재지변의 최대 수혜자 칠성(七星)고수가 조용히 모든 사안의 막후 실세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문파 출신들간의 쟁투가 여전하니 조정해야 할 사안도 많은 법이다.

황실로 자리를 옮겨 공력을 모으던 천재(千才)장로도 예상치 못한 우리 문파의 편지 한장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민초들은 그 것이 터무니 없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황실 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무림 분파들의 논공행상에 바쁜 고수들은 민초들의 생각대로 움직일 일이 별로 없지 않은가. 이 것이 또한 무림을 보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천자의 신임이 두터운 천수(天壽)장군마저도 잠시 황실의 한켠 쪽방에 갖혀 지낼 정도였고, 이를 천자가 천수장군의 상처를 치료해주려는 술책이라는 사실을 아는 문파들도 많지 않았다.

어쨌든 천재지변으로 인한 무림 분파간의 전투는 그 동안 한반도 밖 쓰나미로 잠시 휴전상태를 보였지만, 다시 꿈틀대는 양상이다.

시작은 다시 우리 문파다. 천재지변의 진원지가 아니던가. 그 만큼 균열의 정도도 심할 수밖에 없다.

칠성고수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공력을 회복하고 우리 문파에서 재미를 톡톡히 본 토종 검법을 써먹을 수 있는 국은 문파 교주 자리를 차지한 영귀(影鬼)검황도 예외는 아니다.

굴러 온 교주에 대한 국은 문파 검객들의 믿음이 어디 한결 같을까.

무림 최대 문파인 국은 문파를 이끌던 정언(正彦)마제가 외은 문파 흡수과정에서 삐끗한 틈을 타고 교주 자리를 차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국은 식솔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우리 문파들간의 소리없는 이전투구가 이리도 파괴력이 클 줄이야. 그 동안 우리 문파 교주 자리를 지키기 위해 관군들과 벌였던 선명성 경쟁은 당시 문파의 단결을 끌어냈지만, 이제 그 힘은 고스란히 칠성고수가 누리고 있다.

또한 칠성고수는 그 단결공을 배가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홀혈단신 우리 문파를 접수했던 영귀검황에겐 `뿌리`를 찾기 위한 우리문파 민초들의 동요가 부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영귀검황은 정언마제를 찾았다. 패(貝)재상회의가 영귀검황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 마련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그 시각이다. 술 한잔씩을 돌리면서 영귀검황을 무림에서 축출하기 위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술판이 벌어지기 직전. 영귀 검황은 패재상회의 수장에게 마지막 연통을 넣었다.

"국은 교주자리에서 물러나겠소. 대신, 명예는 지키고 싶소."

그러나 패재상회의 수장은 쌀쌀맞았다.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지금이라도 물러나 화해주를 청하면 검황의 감형에 힘을 보태겠소."

영귀검황은 억울하고 또 억울했지만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부교주 정언마제에 무릎을 꿇어서라도 살아야 한다.

마주 앉은 자리가 영 어색했지만, 그나마 진한 차 한잔의 향기가 영귀검황이 운을 떼는 데 그나마 위안이 됐다.

"마제, 많이 섭섭했소? 나에게 시간을 좀 주지 않겠나? 그래도 한 동안 무림 고수자리를 누려왔는데,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떠날 수는 없지 않겠소?"

정언마제는 영귀검황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차를 드는 손가락도 영 부자연스러운 떨림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음……. 패재상회의 검객들의 내공은 역시 간단치 않구만……." 그러나 정언은 진한 차의 맛을 다시 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만다.

"곧 나의 호위무사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것이요. 그들은 이제 나의 품을 떠날 것이요. 그리고……, 마제를 교주로 다시 옹립하는데 힘을 보탤 것이요."

영귀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언이 말을 잇는다.

"당연히 명예를 찾아야죠. 교주님의 이 치욕은 우리 국은 문파 뿐만 아니라 무림 전체에 득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교주님의 호위무사들과 무림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겠나이다."

정언마제는 영귀검황의 떨리는 손을 잡았다. 검황의 손은 차다. 이미 사람의 손이 아닌듯 하다. 패재상회의의 술수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그들은 무림에서 권법을 직접 휘두른 적이 거의 없지만, 그들의 마귀에 걸리면 정신을 이리도 몽롱하게 만든다. 아예 마귀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정언은 속으로 되내이고 또 되내였지만, 본의 아니게 떨어져 나갔던 핵심 분파를 다시 복속하고 별을 띄우리라는 희망에, 심장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관련기사]
☞「①우리문파 시대 열리다(2008년 6월25일 11시32분)」
☞「②亂世는 영웅을 부른다(2008년 6월26일 10시30분)」
☞「③하나문파의 飛上(2008년 6월27일 10시56분)」
☞「④백성이 무림의 미래다(2008년 6월30일 10시39분)」
☞「⑤무림은 돌고 돈다(2008년 7월1일 11시16분)」
☞「⑥굴러온 돌과 박힌 돌<外傳>(2008년 7월2일 10시10분)」
☞「⑦화산논검(華山論劍)<完>(2008년 7월3일 11시45분)」
 

▲패(貝)재상회의 = 10여년전 오랑캐 `아이엄어부(亞以嚴於部)`의 침공(환란) 때 만들어져 무림재편을 이끄는 회의조직. 이후 날로 세력을 키워 민초들의 패(貝)를 매개로 한 대부분의 상거래에 개입하며, 무림 분파들의 뒷조사 때 주로 사용하는 조검(調檢)권법이 유명함. 최근엔 민초들의 집터 내사에도 열을 올리고 있음. 
▲칠성(七星) 고수 = 38년간 우리문파 요직을 지내다 무림을 떠남. 지난 3년간 음악과 풍류생활을 즐김. 돌연 무림에 돌아와 천재(千才) 장로를 실각시키고 우리 문파 교주 자리에 오름. 황실의 지원 내지 묵인을 바탕으로 우리 문파 중심의 중원 통일을 꿈꾸고 있음. 천자(天子)가 어린 시절 수학(修學)한 고대사(高對寺) 출신.
▲천재(千才) 장로 = 관군에서 정통 무장으로 30여년간 재직하다 우리 문파에 지난해 영입됐음. 최근 칠성(七星) 고수로부터 치명상을 입고 교주 자리에서 밀려났으나, 황실의 부름을 받고 좌장군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음.
▲회춘(回春) 대인 = 우리 문파 부교주로 천재(千才) 장로와 같이 우리 문파를 지휘하다 칠성 고수에게 밀렸음. 이후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 도성수비대장으로 임명돼 우리 문파 시절 못지않은 막강한 병력과 물자를 관리하고 있음.
▲숭유(崇柳) 무제 = 하나 문파 교주로 최근 관군으로부터 독사 독의 1조7천억배 독한 법인장풍을  맞고 은둔하다 최근에야 회복됐음. 칠성 고수의 맞수로, 외은 문파 흡수를 노리다 최근 규모가 더 큰 우리 문파에 관심을 갖고 있음. 천자(天子)와 고대사(高對寺) 동기동창.
▲위성(爲星) 대인 = 산은 문파 교주로 최근 취임 했음. 우리 문파의 통폐합 시도를 막고 오히려 역공을 펼칠 계획을 세우고 있음. 먼저 외은 문파나 기은 문파를 포섭해 세력을 키워 우리 문파에 맞서려고 함. 서역 오랑캐들과 교유(交遊)가 깊음.
▲영로(營露) 신장 = 기은 문파 교주로 천재(千才 ) 장로와 마찬가지로 관군 출신. 우리 문파와 산은 문파의 통폐합 기도를 막고 독자생존과 세력확장에 나설 것을 도모하고 있음.
▲천수(天壽) 장군 = 우장군으로서 좌장군인 천재(千才) 장로, 재상인 전광(前光) 선인과 라이벌 관계임. 천자(天子)로부터의 신임이 두터움. 천재(千才) 장로와 함께 무림 통폐합론을 지지했으며, 이에 소극적인 전광(前光) 선인과 견해 차이를 보임.
▲정언(正彦) 마제 = 무림 최대 문파인 국은 문파 교주. 당초 외은 문파 흡수를 수년간 추진해왔으나 최근 문파 내부조직 개편문제로 고민하고 있음. 무림고수를 영입, 문파 수장을 교주와 부교주로 양분하자는 원로회 일각의 주장에 반발하고 있음. 우리·산은 문파 도모에도 관심을 보임.
▲영귀(影鬼) 검황 = 우리 문파 교주 출신. 검의 귀재로 절대무공인 `토종(土種) 검법`으로 무림을 떨게 했음. 국은 문파 최고 수장자리를 꿰찼지만 패재상들의 미움을 사 맹독에 상처를 입고 문파 수장에서 몰려날 위기에 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