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12.21 12:44:00
[조선일보 제공]
다이칸야마가 쇼핑과 문화의 거리로 출발한 시점을 굳이 이야기하면 1969년 ‘힐사이드 테라스’가 생기면서부터이다. 서울과 비교해보자면 청담동에 ‘유지승 미용실’과 ‘고센’이라는 카페가 생뚱맞게(그랬다. 고급 주택가에 카페라니!) 들어서고 나서 이 곳이 음식점을 중심으로 한 상업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나, 학교와 주택과 벌판이 전부였던 홍대앞에 ‘흙과 두 남자’라는, 흔들 그네 의자가 있는 카페가 생기면서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과 같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의 그곳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이칸야마 역시 본격적인 쇼핑 문화 타운으로 주목받기까지는 매우 오랜 세월이 필요했고, 2000년 주상복합 ‘다이칸아먀 아도레스’가 준공되면서 방문자가 부쩍 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이한 매장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도쿄에서 가장 매력적인 쇼핑 거리 가운데 한 곳으로 자리잡았다. 일본 젊은이들은 물론 한국의 젊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이칸야마가 아시아의 유명 쇼핑 문화 거리가 된 것은, 이곳의 매장이 예술적인 인테리어와 절제된 디스플레이, 그리고 마니아적 상품 구성 등 고객의 눈길을 꽉 잡을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칸야마에는 가부키·나고야·모던아트·클래식·스칸디나비안 등 다양한 스타일이 즐비하지만 역시 주류를 이루는 것은 빈티지다. 빈티지가 강세인 것은 물론 다이칸야마만의 일은 아니다. 런던·파리·뉴욕·상하이, 그리고 서울 등 전세계적인 트렌드가 바로 빈티지다. 다이칸야마의 빈티지숍에 들어가면 그 깊고 진한, 게다가 유머까지 동원된 분위기에 자칫 주눅들기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이 친구, 이 가게의 주제가 뭔지 알아? 음…빈티지를 느낀다? 눈이 좋군! 무얼 보고 빈티지를 생각한 거지? 응? 설명이 쉽지 않다고! 맞아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런데 중요한 건 당신이 지금 우리 공간에 들어와 빈티지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지…. 내가 만든 주제를 타인이 알아준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야. 안 그런가 친구!’
그랬다. 다이칸야마의 모든 숍들은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분명한 주제로 설계하고, 주제에 맞는 예술사조로 시공하고 개방적 정신문화로 마감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주제를 바꾸지 않는다. 주제의 변경은 폐업을 뜻한다. 자신이 선택한 주제를 누더기로 만드는 굴욕적 누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다이칸야마 가는 길은 시부야역(JR야마노테선)을 기준으로 전철(도큐도요코선)을 타는 것과 도보로 가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걸을 경우 다이칸야마의 메인 로드인 하치만도오리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라는 에스프레소 집이 있다.
주제는 빈티지와 300엔이다. 정물화처럼 서 있는 매니저이자 주방장이자 홀 서빙 청년에게 물었다. “간판은 ‘300 오브 조이’인데…. 그다지 즐거운 분위기는 아닌걸?” 정물화 청년이 정물화 그대로인 채 대답한다. “주제는 소박함이지요.” 듣고 보니 이 집은 공간도 작고 바도 작고, ‘여성전용석’이라고 써놓은 의자와 테이블은 더더욱 작았다.
조금 더 내려가면 이 나온다. 쇼윈도에 트레이닝 상의 몇 아이템이 대충 걸려있다. 매장 어디를 보아도 과밀한 공간이 없다. 진열해 놓은 상품도 단출하다. 일부러? 그렇다. 이 집의 주제는 ‘리미티드’(한정판매)다. 어떤 이는 이곳을 옷 가게가 아닌 투자할만한 예술작품을 파는 곳으로 여긴다. 누가 아는가. 2006년 12월에 12만엔에 구입한 아디다스 벨벳 트레이닝이 2036년 옥션 시장에서 500만 엔에 낙찰될지. 그렇다. 이곳은 ‘두 스포츠’(Do Sports)도 ‘씨 스포츠’(See Sports)도 아닌, 스포츠 패션 스타일을 위한 공간이다. 운동복은 없고 아디다스 스타일만 있는 것이다. 다시 하치만도오리를 걷는데 무광택 블랙 컬러 1967년산 메르세데스벤츠 240D 3.0이 유유히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