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돌은 바다의 집이자 태고의 기록

by조선일보 기자
2010.03.11 12:25:00

올레 8·9·10 코스

[조선일보 제공] 땅의 속내를 아는 지름길 중 하나는 그 땅의 가장자리에 서는 일이다. 제주에서 이 말은 타당하다. 바다와 맞닿은 남서 해안에서 화산섬 제주는 화산암이 본질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불에서 시작된 제주의 돌은 바람과 물을 만나 비로소 지금의 섬을 이뤘다. 그 위로 풀이 돋고 길을 내고 건물이 들어서도, 어디까지나 제주의 기원이자 주인은 돌이다. 그 돌의 시작과 변형의 세월을 만나러 가는 길, 올레 8~10코스.



제주는 수백만 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한 화산이 만들어낸 조면암과 현무암 덩어리다. 다시 말해, 제주의 속내를 알기 위해선 제주의 돌을 만나야 한다. 그 돌을 만나기 쉬운 길이 올레 8~10코스다.

여정은 8코스 중간 즈음인 갯깍 주상절리에서 시작한다. 중문 하얏트 호텔 주차장을 지나 올레에 합류하면, 유채꽃 핀 산책로를 건너 육각형 기둥이 늘어선 절벽과 마주친다. 이 육각형 모양의 돌이 주상절리다. 주상절리는 화산 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형태다. 지표로 분출된 뜨거운 용암은 식으며 수축한다. 수축하되, 질서 있게 육각형 모양으로 굳어지며 남는 공간을 틈으로 비운다. 논바닥이 땡볕에 갈라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 아아 용암. 이 기암괴석을 만들어낸 용암의 이름이다. 하와이 토착어로 표면이 거친 암석을 가리킨다. 불이 낳은 돌은 물을 만나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
▲ 여정의 시작, 갯깍 주상절리를 만나러 가는 길

갯깍 주상절리는 바위의 성질 그대로 단단하나, 단단함이 비운 틈으로 부드러움을 받아들인다. 주상절리의 틈마다 풀이 돋고 인간의 소원 담긴 자갈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주상절리 너머에선 돌이 물을 만나 만들어낸 동굴이 연달아 나타난다. 다람쥐궤와 들렁궤. 다람쥐궤는 입구 높이가 낮지만 들렁궤는 무척 높다. 그 높이는 한때 이곳 해수면이 높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파도는 암석 중 가장 연약한 곳을 집요하게 치며 구멍을 냈을 것이고, 바위는 파도에 제 몸 일부를 내줬을 것이다.

파도뿐 아니라 바람도 바위를 침식한다. 논짓물을 지나면 삐죽 뾰족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검붉은 암석을 만날 수 있다. 대기와 먼저 만난 용암이 빠르게 식어 표면이 거친 바위가 됐고 그 위로 바람 불고 파도 치며 지금의 모양이 됐다. 올레 8코스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수십만 년, 혹은 수백만 년에 걸쳐 이뤄진 대역사의 결과다.





9코스는 박수기정에서 시작한다. 박수기정 역시 대표적인 주상절리다. 박수기정을 오르는 아담한 산길에서, 파도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새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길에서 마주치는 건 돌의 안쪽에서 펼쳐낸 제주도민의 생활이다.

제주의 돌은 대부분 현무암이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현무암은 물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런 땅 위에서 사람들은 살기 어렵다. 그래서 지하에서 솟는 물, 용천수가 나는 곳에 제주도민은 모여 산다. 1년 내내 샘물이 솟아 이 물을 바가지로 마신다는 뜻의 '박수'와 절벽의 의미를 가진 '기정'을 합친 박수기정, 이곳에 자리 잡은 마을 '난드르(넓은 들)'는 그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박수기정과 화력발전소를 연이어 지나면 봉하동 마을 올레에 들어선다. 여기서 길은 양편으로 대파밭을 감싼 돌담을 안고 흐른다. 거무튀튀한 현무암으로 얽은 돌담은 마구 쌓아올린 돌무더기처럼 질서없다. 바람을 가로막기 위한 담이나, 바람이 지날 수 있는 틈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담이 쌓인 모양이 어설퍼 보이나 사실, 제주에선 빈틈없는 시멘트 돌담보다 현무암 돌담의 효용이 더 크다. 사나운 바람은 구멍 없는 돌담을 힘으로 무너뜨리되, 현무암 돌담에선 틈을 통과하며 순해진다. 하여 그 구멍들로 검은 돌담은 외려 제 역할을 다 한다.


철새들이 점점이 박힌 화순해수욕장을 지나면 퇴적암 지대를 만난다. 다른 퇴적암 지대와 달리 이곳 암석은 응회암이다. 바다속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그 재가 쌓인 퇴적층. 다시 말해 이곳은 한때 물속이었다. 바다가 고향인 이 퇴적암들은 바다를 떠나며 제 살을 아프게 떼어낸다. 떨어낸 흔적은 벌집 모양으로 남아 기형의 모습을 완성한다.

퇴적암 지대를 지나면 바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곳, 용머리다. 100만 년 이전에 형성된 암석이 모습을 드러낸 곳. 그 뒤로 보이는 산방산 역시 제주의 오름 중 가장 오래된 암석이 발견된 곳이다. 점성이 높은 조면암이 수직으로 떨어지며 굳은 산방산 남벽은 용머리 해안을 굽어보고, 용머리 해안은 오랜 세월로 주상절리의 흔적만 아스라한 산방산을 올려본다.

용머리와 산방산에서, 제주의 땅은 태고의 모습을 내비친다. 가공되지 않은 땅은 오로지 그 묵중한 질감으로 추상화된 땅의 관념을 모두 물리친다.

제주의 돌에 대해 잘 알려면 돌문화공원을 먼저 방문하는 게 좋다. 시간이 없다면 공원 내 제주돌박물관만 방문할 것. 어른 3500원, 청소년 2500원.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119 (064)710-7731

제주공항에 내려 돌문화공원을 찾았다면 조금 에둘러 동복해녀촌을 들르자. 방어회에 국수를 비빈 회국수가 매콤하면서도 시원하다. 회국수 6000원.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1638-1 (064)783-5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