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윤경 기자
2001.05.28 15:30:06
[edaily] 요즘 "사나이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가 장안의 화제다. 이 영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대사가 몇 가지 있는데, "내가 니 시다바리가?(내가 네 하수인인가)"라는 말이 그 하나다. 수평적 관계인 우정이 아닌, 상하 수직적이면서 굴종적인 관계라면 향후 상호 관계에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복선으로 들린다.
"시다바리"라는 말은, 다시 돌아보면 독립적 미래를 지향하는 말이기도 하다.
달마다 일의 대가를 받아 살아가는 봉급 생활자로서, 글쎄 "시다바리"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떠올리지 않은 사람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벤처 창업"의 붐이 그야말로 놀랍도록 일었던 것은.
인터넷 벤처창업 열기가 달아오르기도 전인 96년 인터넷 경매시장에 진출, "옥션"이라는 브랜드로 생소했던 "인터넷 경매" 시장을 개척한 오혁 사장은 올초 이베이에 회사를 넘기자 마자 다소 "황황하게" 회사를 떠났다. 떠난 시점을 두고 당연히 뒷말이 무성했다. 그러나 오사장은 떠나는 날 찾아갔던 기자들에게 과거에 대한 미련에 대해서는 함구했고, 새로운 출발에 대해서만 얘기했었다. 따라서 또다른 창업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자기가 낳은 자식을 떠난 심정이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은 내내 남았다.
"새 사업을 구상했던 것은 이미 지난해 이베이와 협상이 무르익을 무렵부터였습니다. 옥션을 퇴임하는 것도 이미 계획돼 있었습니다. 다만 시점은 소문이 먼저 나는 바람에 서둔 감도 없지 않습니다만"
오사장이 이베이와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 7월부터였다고 한다. 옥션은 참모들을 산호세로 직접 보내 이베이와 접촉, 지분 투자를 비롯한 제휴에 대한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이베이는 아시아 진출 의사가 뚜렷했고 51%의 지분을 요구했지만, 이는 옥션 대주주들의 입장을 감안할 때 어려운 조건이었고, 따라서 제휴는 무산됐다. 이후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던 차에 대주주가 직접 나섰고, 인수협상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창업자가 반드시 계속해서 주인이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옥션을 통해 저는 창업부터 공동대표 체제 운영, 대주주와의 관계, 코스닥 등록과 인수협상까지 정말 많은 것을 체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옥션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제가 떠나도 될만큼.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으니 새로운 방법으로 또 성장을 계속해야겠죠."
오사장의 말에서 애써 감춘 섭섭함이 배어난다. 이전 사업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분야의 사업에 착수한 것 또한 아쉬움과 섭섭함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오사장이 새출발하면서 내놓은 카드는 여러 가지다. 친구가 지어줬다는 "빛난다"는 뜻의 "브릴리언트(Brilliant)"에서 유래한 "브리앙 그룹"은 디스플레이 전자소자 제조업체 "브리앙 NDM", 금속업체 "가야 AMA"와 "브리앙 골드", 전자상거래와 B2B 솔루션업체 "브리앙5"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브리앙 NDM은 LG화학에서 나노 디스플레이를 연구하던 팀을 중심으로 구성, 일반 프린터용 잉크에서부터 옥외광고용 특수잉크 등을 제작한다. 곧 TFT-LCD 용 색소자도 개발, 생산할 계획이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백라이트가 필요없는 컬러 디스플레이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야 AMA는 기능성 소재부품 제조시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분말 야금 미세소자를 개발하고 있으며, 브리앙 골드는 부식되지 않으면서 금에 가까운 금속을 개발중이다.
"브리앙 상사"는 지주회사격으로 이들 업체에 대한 투자 및 해외수출 등을 돕는다. 이외에도 최근 인수한 멀티미디어 온라인 게임업체 "인디 21"을 비롯, "포탈 아트넷", 차세대 전자상거래 모델을 표방한 "이타이드", "브리앙 엔터테인먼트"가 그룹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타이드의 경우 "온-오프라인 결합"이라는, 온라인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던 오사장의 오랜 꿈을 실현해 줄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이타이드는 소니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오프라인 통합 대리점을 개설하고, 온라인에서 주문을 받아 거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시작한 분야들입니다.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는 상관없습니다. 물론 제품을 생산해 내는 사업을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오프라인의 실체를 통해 부가가치를 일으키는 것이 사업하는 불안을 해소해 줄거라는 생각도 있었던 거죠."
이런 사업 하나하나를 설명하는데 각각 반시간 넘어 걸릴만큼 오사장의 의욕은 넘쳐났다.
대체로 국내 기업의 경우 전문경영인 체제라기 보다는 창업자가 대주주이자 경영자로서 모든 능력을 발휘하려는 구조 아니냐고 물어 봤다. 오사장이 자신의 능력중 방점을 두는 부문은 어떤 것일까 들어보기 위해서였는데, 다른 의미의 현답(賢答)을 받았다.
"오너냐 전문경영인이냐의 논란은 의미 없다고 봅니다. 얼마나 기업이 잘 움직일 수 있는 체제인가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고 치밀한 계획, 그리고 원리원칙에 입각한 경영을 통해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CEO가 할 몫입니다."
오사장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덕목은 신뢰.
"경영투명성이 보장되는 확실한 지원이라면 투자를 받거나 인수됨으로써 주인이 바뀐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업 활동이란 결국 인간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 아닙니까?"
섣부른 해석일 수 있겠으나, 오사장의 과거 마음고생, 그리고 옛것을 거울 삼아 신중한 발걸음을 내딛겠다는 이면(裏面)을 읽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말이다.
<증권산업부 김윤경 기자 s914@edaily.co.kr>
<오혁 사장 이력>
1980년 동성고등학교 졸업
1982년-1989년 동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1989년-1996년 삼도데이타시스템 과장
1996년 3월 일사랑정보(옥션 전신) 창업, 대표이사
1998년 12월 인터넷경매(옥션 전신) 대표이사 사장
1999년 인터넷 경매, 옥션으로 상호변경
1999년 10월 한국 100대 벤처기업인 선정.
1999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EC 최고경영자과정 1기 수료
2001년 1월 옥션 대표이사 사임
2001년 2월 브리앙5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