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학폭 피해자입니다, 삶을 포기 마세요” 서울대생의 자필편지
by송혜수 기자
2023.03.06 10:23:44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교폭력 전력이 드러나 하루 만에 낙마하며 파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대학교의 한 학생은 정 변호사 아들로부터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응원의 편지를 적었다.
| 서울대 사범대학 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응원의 편지를 적었다. (사진=서울대 에브리타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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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서울대 사범대학 학생이라고 소개한 A씨는 지난 4일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을 통해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에브리타임은 합격 통지서나 학생증 등으로 학교를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다.
A씨는 자필 편지에서 자신도 과거 학교폭력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 밝히면서 “학교폭력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 반성도 없이 잘살고 있는 현실에 많은 피해자가 힘겨워하고 있을 요즘”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중학생이었던 저는 가해자들의 괴롭힘, 방관하는 또래들의 무시. 네가 문제라는 담임교사의 조롱으로 매일 살기 싫다는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라며 “학교는 지옥이었고 부모님조차 저의 정서적 환경보다는 학업 성적에 관심을 두셨기에 집조차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여름 방학엔 학교에 가지 않으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등록한 학원에서 다른 학교 학생이 ‘너 왕따라며?’라고 비웃더라. 부끄러워하고 숨어야 할 쪽은 가해자인데 손가락질당하는 사람은 저 하나였다”라고 회상했다.
또 “어느 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 한참을 울었다. 울어도 현실이 그대로일 것을 알기에 더 서러웠던 것 같다”라며 “며칠 뒤 학교에 가니 제 생기부에는 무단 결과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몇 마디 훈계만 들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 어떠한 사과도 없었다”고 했다.
A씨는 “나중에 듣기로는 한 가해자가 ‘걔 자살했으면 학교 문 닫았을 텐데 아깝다’라는 말을 했더라”며 “지금도 잘살고 있는 정모씨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저는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폭력 없는 환경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즐거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 신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자녀의 과거 학교 폭력 문제로 낙마한 가운데, 지난달 28일 오후 정 변호사 아들이 진학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대학교에 관련 내용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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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해자가 발도 못 들일 교실, 피해자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교실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라며 “그리고 오늘 지금 이 순간도 잠 못 이루고 있을, 아픔을 가진 피해자들이 이어지는 제 말에 위로받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편지의 말미에 A씨가 덧붙인 말은 아래와 같다.
“당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상처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아픔이 길겠지만 영원하진 않으니 삶을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의기소침하지도 마세요. 폭력에 무너지지 않고 그 다리를 건너온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한편 정 변호사의 아들 정씨는 지난 2017년 강원지역 유명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해 동급생에게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언어폭력을 지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정씨는 이듬해 3월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다. 정 변호사 부부는 당시 미성년자였던 아들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전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19년 4월 최종 패소했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전학 처분을 받은 지 1년 만인 2019년 2월에야 학교를 옮겨 피해 학생이 장기간 2차 가해에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피해 학생들은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대학 진학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정씨는 2020년도 정시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