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아세안 "통화스왑으로 달러 의존 줄인다"(종합)
by조진영 기자
2015.05.03 23:14:28
제18차 ASEAN+3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공동성명
"역내 통화스왑으로 무역결제 활성화"
무역결제 실효성 떨어지는 점은 과제
[바쿠(아제르바이잔)=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들은 미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대외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완화하는데 합의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역내 통화스왑을 통한 무역결제 활성화 △긴급유동성 지원계획 보완 △아시아단일채권시장 내 채권 시범발행 등을 채택했다.
ASEAN+3 경제 수장들은 3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18차 ASEAN+3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공동성명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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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치들이 완료될 경우 한국과 아시아 주요국가들이 1997년 금융위기 당시 겪었던 통화불일치 현상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전망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대부분 소규모 개방경제에 비기축통화라서 국제 자본시장 흐름에 따라 급격한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면서 “역내 국가들이 지난 98년 외환위기 때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미 달러화 부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국내에 달러화가 부족한 바람에 빌린 돈을 갚지 못했다. 이번 조치는 부채가 다양한 통화로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위기대응에 더욱 수월해진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역내 통화표시 무역결제 촉진방안’은 수출입 기업들이 통화스왑 자금을 무역결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하는 방안이다.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가 이미 체결한 통화스왑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한국은 현재 중국과 64조원·3600억 위안 규모의 통화스왑(2017년 10월 만기)이 체결돼있으며 이를 무역결제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중국과 인도네시아도 각각 10조7000억원·115조루피아(2017년 3월 만기), 1000억위안·175조루피아(2016년 10월 만기) 규모로 통화스왑을 진행중이지만 이전까지 무역결제에 활용하지 않아왔다.
성명서는 “수출입 기업들에게 무역금융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라며 “미 달러 등 기축통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임으로서 대외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완화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13개국 경제수장들은 역내 금융안전망인 CMIM(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와 AMRO(ASEAN+3 거시경제감시기구) 기능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AMRO는 ASEAN+3 국가들의 위기 상황을 조기에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관련국들은 위기 시 도움 받을 수 있는 적격 국가를 선정할 때(CMIM-PL제도) 구조적인 분석방식도 포함하기로 했다. 항목으로는 △대외 및 금융부문 안정성 △재정의 지속가능성 △통화정책의 신뢰성 △정보적합성 등을 채택했다. 이전까지는 각 국가별로 과거 실적을 비교해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수준이었다.
ASEAN+3 거시경제감시기구인 AMRO에 대해서는 금년 하반기 국제기구 전환을 앞두고 부소장급 직위를 세자리 신설하기로 했다. 소장 1명 아래에 부소장 2명과 수석이코노미스트(부소장급) 1명을 두는 방안이다.
AMRO 고위관계자는 “한·중·일과 ASEAN 국가들이 한 자리씩 가져갈 수 있는 4자 황금분할 구도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AMRO의 중국과 일본의 지분은 32%, 한국은 16%, ASEAN 10개국은 20%를 가지고 있어 중국과 일본에 의한 지배가 문제돼왔다.
그러나 CMIM에서 단독으로 받는 지원금 비중을 늘리는데는 실패했다. 주로 지원을 받는 입장에 있는 ASEAN 국가들은 비중을 늘려달라고 했지만 한·중·일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한·중·일은 지난해 CMIM 단독 지원금 비중을 20%에서 30%로 늘렸기 때문에 또 한번 올리는 것은 너무 빠르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를 맞은 국가가 CMIM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동시에 신청해야한다. 백승호 한은 아태협력팀장은 “IMF에서 구제금융 지원 확정을 받았다는 것은 검증절차가 끝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재 참여국가들이 IMF에 지원요청을 하지 않고 CMIM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전체 구제금융 금액의 30%로 설정돼있다.
백 팀장은 “해당 국가가 받아갈 수 있는 구제금융액은 지분에 따라 나뉜다”면서 “AMRO가 자체적인 검증 기능을 강화하고 국제기구로 승격됨에 따라 단독 지원금액을 늘려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합의 내용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참여국 사이에 통화스왑 비중이 낮은 수준이고 각국의 금리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서 팀장은 “국내 기업들이 인도네시아 화폐인 루피아로 결제하려는 수요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실수요가 있지 않고서는 단시일 내에 기반이 확대되기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내 통화를 많이 쓰도록 해 미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위기를 피할 수 있는 마중물로서의 역할정도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한국이 가장 큰 교역파트너임에도 스왑자금에 의한 무역결제가 미미한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 총재는 “자유로운 통화이용을 저해하는 제도가 미비한 문제, 오래된 결제관행이 미 달러에 치중된 문제 등이 있다”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양국간 스왑자금을 통한 무역결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