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프레시아 딘다와 군불 때는 집에 가다
by조선일보 기자
2009.12.10 12:00:00
"설설 끓는 구들장에서 가마솥밥 먹어봤어?"
장작불 지펴 구들장에 굽는 목삼겹
[조선일보 제공] 겨울 햇살이 소복소복 내려앉는 강원도 강릉 경포호를 돌아 작은 바닷가 마을에 들어섰다. 한옥 펜션 '휴심'네 강아지 멍군이는 1분 남짓 악착같이 짖더니 어느새 배를 드러내고 누워 예뻐해 달라고 버둥거린다. 케냐에서 온 유학생으로 KBS 토크쇼'미녀들의 수다'에 출연 중인 유프레시아 딘다(25·강원대 신소재공학과 대학원)씨가 삐죽 솟은 황토 굴뚝에서 솔솔 피어나는 연기를 보고 소리쳤다. "와, 벌써 불 피우나 봐요. 나무 타는 냄새가 정말 구수한데요."
| ▲ 집 반대편에 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그 열기가 방 아래를 지나 반대편 굴뚝으로 빠져나온다. 케냐인 유학생 유프레시아씨는“나무 타는 냄새가 정말 구수하다”고 했다. 조선영상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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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가 보이는 강릉시 저동 '휴심'에선 별별 모양의 전통 집을 다 만날 수 있다. 나무꾼들이 살았을 법한 통나무집, 아담한 초가집, 떡 벌어진 기와지붕의 양반집…. 이 펜션 주인 김남수씨는 "한옥을 짓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꼬박 2년 동안 만들었다"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옛사람들이 살았던 여러 모습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후 일본에서 유학했다. 1990년대 초 일본 시골에 유행처럼 늘어가던 펜션들을 보며 '내 고향 풍경도 일본의 어느 고장 못지않은데…'라는 생각에 자주 젖었다. 한 무역회사 스리랑카 지사에서 일하는 동안 더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며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전통 펜션'을 구상했고 2000년 고향으로 돌아와 이 체험형 숙소를 지었다.
명함에 '머슴'이라고 새긴 김씨는 묵직한 도끼로 소나무를 쩍쩍 쪼개며 "가마솥 밥 짓는 데는 내가 도사"라고 했다. 쪼갠 나무를 아궁이에 하나씩 쑤셔 넣었더니 커피 타는 향 비슷한 고소한 냄새가 하얀 겨울 하늘로 퍼진다. 아궁이는 33㎡짜리 방 '경호정'에 붙어 있고 굴뚝은 방 반대편에 솟아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그 연기가 방 아래를 지나며 바닥을 데운 다음 굴뚝으로 빠져나온다. 가스레인지로 요리하고 기름 보일러로 난방하는 현대식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이다. 이 같은 형식의 '장작 아궁이 구들방'이 '휴심'엔 두 개 있다.
"2003년 펜션을 연 직후엔 밥을 태워 먹어서 고생이 많았죠. 손님들은 배고프다고 기다리는데 밥은 새까맣게 타고…. '실패했다'고 고백하고 집에 가서 압력밥솥에 재빨리 밥을 지어 가져온 적도 있어요."
설명서 보고 따라만 하면 밥이 되는 전기밥솥과 달리 가마솥 밥은 경험이 쌓여야 만들어진단다. 자유자재로 불 조절이 가능한 '가스레인지 솥 밥'과도 차원이 다르다.
"장작으로 불 조절 하고 뚜껑 열 시간을 감으로 맞춰야 해요. 예전엔 불안해서 자꾸 뚜껑을 들썩거렸는데 요즘은 뚜껑 한 번 안 열고 한숨에 밥을 짓죠. 이거,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대단한 기술이라니까요."
| ▲ 1 '휴심' 주인 김남수씨가 개발한 '장작 돌판 구이' 2 가마솥 바닥에서 제대로 눌은 누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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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바가지에 쌀을 박박 씻어 솥에 넣은 지 20여분 만에 김씨가 뚜껑을 열었다. 빼곡한 김이 기와 아래 뭉게뭉게 뭉쳤다가 흩어진다.
지난해 담근 묵은 김치와 된장 호박 감자 넣어 소박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촉촉한 가마솥 밥과 어우러진다. 야외에 있는 식탁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아궁이 위에선 두툼한 돼지 목삼겹이 지글지글 익는다. 김씨가 개발·제작한 '장작 돌판 구이'는 펜션을 지을 때 목수들이 돌판에 고기 구워 먹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
"다른 돌 두 개로 바닥을 받쳐 고인돌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아래 장작으로 불을 때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참 신기해 보였어요. 불이 노출돼 있으면 위험하니까, 저는 손님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황토로 아궁이를 만들었죠."
구들장 위에서 지글지글 익는 목삼겹, 가마솥 바닥에서 누렇게 타는 누룽지, 알루미늄 포일에 쌓여 아궁이 속에서 익고 있는 고구마…. 냄새를 통해 몸에 먼저 깃든 푸짐한 시골 밥상이 날랜 젓가락질을 타고 뚝딱 뱃속으로 사라진다.
_ 군불 때는 방 두 개를 포함해 객실은 13개. 모든 건물은 황토와 소나무를 재료로 만들었고, 화장실이 딸려 있다. 침대방·장판방·대나무자리방 등 객실은 여러 형태다. 최대 다섯 명이 묵을 수 있는 군불 때는 방 가격은 주중 8만원·주말 10만원. 장작돌판구이를 즐기려면 최소 하루전에 예약해야 한다. 목삼겹 생고기, 장작 가마솥밥, 반찬, 누룽지, 군고구마 등이 나오는 '장작돌판구이 세트'는 1인분 1만8000원.
_ 경포호와 동해를 동시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경포대는 펜션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경포호를 반 바퀴쯤 돌아가면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1569~1618)과 그의 누나이자 문인(文人)인 허난설헌(1563~1589)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허난설헌 생가 터가 있다.
: 영동고속도로 강릉 나들목→강릉 방면→약 1㎞ 정도 간 후 2차선도로로 진입해 고가도로 타고 길게 좌회전→강릉시청 지나 강릉 고속버스터미널 앞 오거리에서 하이마트가 있는 오른쪽 도로로 진입→삼거리가 나오면 '경포' 방향으로 우회전→오른쪽에 경포호수가 나올 때까지 가다가 '경포대(신사임당 동상)' 이정표에서 좌회전. 주소 강원도 강릉시 저동 64-3
: 강릉고속버스터미널 앞 버스 정류장에서 경포 방면 202번 버스를 타고 '경포대(참소리 박물관)' 앞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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