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쓰는 남자들… “나도 이준기!”

by조선일보 기자
2006.07.06 12:01:00

▲ 왼쪽=삐죽삐죽 바람머리에 검은색과 회색으로 부분 염색한 가발. (가발나라 2만9000원) / 오른쪽=`새기컷`의 진수. 일본 스타일의 밝은 갈색 가발. 패션 가발은 그냥 쓰는 것보다 미용실에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커트하면 더 좋다. (가발 매니아 3만원)
[조선일보 제공] 거리에서 짧은 스포츠 머리가 사라졌다! 바야흐로 장발의 시대, 아니 가발의 시대다. ‘남자 가발’이란 말에 먼저 이덕화, 탈모, 중년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구세대. 이준기, 긴머리, ‘섀기 컷’ 등을 떠올렸길 바란다.

인터넷에는 ‘최신 트렌드 남자 가발’, ‘연예인 가발’, ‘티 안 나는 남자 가발’을 판다는 2만~6만원대 패션 가발 전문 사이트가 수두룩하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10~20대 남성들 사이에서 ‘멋내기용’ 가발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학교에서 머리를 자르라는 말에 다시 스포츠 머리가 된 비참한 고딩 생활(ㅠㅠ) 그래도 가발이 있으니 정말 인생의 낙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가발매니아 아이디 pop891127)

“학교에서 하도 머리를 자르라고 해서 홧김에 반삭발을 했어요. 여자친구랑도 만나야하고 학원도 다녀야하는데, 이 머리로는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서 섀기 컷 삐침 머리 가발을 하나 샀습니다.” (네이버 아이디 hadkyo)

중·고등학교와 군대를 거쳐 직장생활에 이르기까지 각종 두발규제에 얽매여 살아가는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가발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한 달에 한 번씩 스포츠 머리가 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가발을 구입했다는 고등학생 네티즌 pop891127 군. 그는 패션 가발 전문 인터넷 쇼핑몰 ‘가발매니아(www.gabalmania.com)’에 올린 후기에서 “가발을 쓰고 나가면 티가 날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머리 스타일이 좋다고 칭찬해줘서 너무 행복하다”며 “가발 구입비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적었다. 그는 “아! 이제 머리카락이 짧아서 못 입던 스타일의 옷들을 입을 수 있게 돼 가발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가발 판매 사이트 ‘찰랑(www.challang.co. kr)’에서 아이돌 그룹 ‘SS501’ 멤버 허영생 스타일 가발을 구입했다는 임채현 군은 “짧은 머리가 너무 식상해서 큰 기대 없이 가발을 샀는데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정말 놀랐다”며 “여자친구도 어려 보인다고 좋아한다”고 적었다.



‘가발 매니아’의 이정희 사장은 “남자 패션 가발의 경우 작년부터 판매가 늘어나기 시작해서 현재 10대 고객이 제일 많다”며 “요즘 남학생들 유행에 민감한데 머리를 못 기르니까 대신 가발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경우 주로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학원에 가거나 놀러 갈 때 가발을 많이 쓴다고 한다”며 “특히 가발을 쓰고 찍은 사진을 미니홈피 등에 올리는 것도 유행”이라고 말했다.


▲ 달콤&부드러운 김정훈 스타일 자연갈색 가발. 머리에 달라붙는 니트 소재의 비니 모자와 잘 어울린다. (찰랑 3만원)


“신분이 군인이라 후임한테 추천받아서 가발을 구입했어요. 덕분에 사진도 많이 찍고 아무도 군인으로 안보네요.” (옥션 아이디 dong 6017)

“남자친구가 군인이라서 선물로 구입했는데 휴가 나올 때가 기대되네요. 빨리 씌여보고 싶어요.”(G마켓 아이디 vhzmaaa)각종 남자 가발 판매 사이트에는 실제 군인들의 착용 후기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올 가을 군 입대를 앞둔 대학교 1학년 휴학생 신한조(21)씨는 “먼저 군대에 간 한 친구도 휴가를 나오면 꼭 가발을 쓰고 친구들을 만난다”며 “군인이 되면 얼굴이 검게 타고 머리가 짧아서 어디를 가도 눈에 띄고 불편할 것 같아서 나도 휴가 때 가발을 쓸 것 같다”고 말했다.

군인 시절 짧은 머리에 대한 고민에서 착안해 아예 가발 판매 사업에 뛰어든 사람도 있다. G마켓과 옥션 등 마켓플레이스에서 패션 가발을 판매하고 있는 ‘낭랑 18세’ 대표 문상돈(23)씨는 올 1월에 전역한 뒤 한 달 만에 이 일을 시작했다. 그는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짧은 머리 탓에 휴가 나와서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며 “주변에서 이미 ‘휴가용 가발’을 쓰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업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패션 가발을 도·소매로 취급해온 ‘가발나라’의 김명숙 사장은 남자 가발의 유행에 대해 “요즘은 아저씨가 퍼머를 하고 남자도 화장하는 시대가 아닌가”라며 “남자든 여자든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구는 똑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발은 당당한 자기 표현의 일종”이라며 “쓰는 순간 컴플렉스가 자신감으로 바뀌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큰 맘 먹고 구입한 가발. 어떻게 관리해야 오랫동안 ‘폼’나게 쓸까? 인터넷 상에서 판매하는 패션 가발은 실제 인모(人毛) 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열사와 일반원사가 대부분이다. 3만~6만원대의 고열사 가발은 열에 강해서 드라이어나 전기 고데기 등을 사용해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만~3만원대의 일반원사 가발은 왁스나 찬바람 드라이만 사용할 수 있다. 모든 가발은 세척이 가능하다. 따뜻한 물에 샴푸를 조금 풀고 살살 흔들어 빨면 된다. 단, 심하게 문지르거나 실제 머리를 감듯이 빨면 망가질 수 있다. 세척 후에는 그늘에서 말린다. 또한 가발을 원래 모양 그대로 오래 사용하려면 가발걸이에 걸어서 보관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