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독립성 점검)③일본은행의 뼈아픈 기억

by이학선 기자
2010.03.12 11:46:38

플라자합의 후 과도한 완화정책 자산거품 조장
정부의 국제공조론에 발목..일본은행, 정책실기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통화정책의 실기(失期)는 곧잘 버블로 이어지곤 했다. 일본과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그랬다. 불확실한 경기, 안정된 물가를 이유로 금리인상을 주저했던 중앙은행들은 여지없이 자산가격 거품 문제에 직면했다.

달콤함의 대가는 컸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겪었고, 미국은 전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위기를 만들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플라스틱 버블(카드위기)에 이어 부동산시장 거품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약탈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08년 하반기 전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대듯 양적완화 정책을 폈지만 이 같은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올해초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시장이 지속될 수도 없는 정부의 부양책에 너무 크게 기대고 있다"며 버블에 대한 경고음을 냈다. 폭탄 돌리기 하듯 유동성을 즐기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기가 수습되기도 전 각국이 출구전략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출구로 이동하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경제 각부분에 거품이 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경제 전체가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85년 플라자합의에서 엔화강세를 용인하기로 한 뒤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금리를 크게 낮추는 등 지나친 금융완화를 실시한 것이 버블생성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엔고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일본은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총 13조5000억엔에 이르는 내수부양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기준할인율을 5.0%에서 2.5%로 인하하는 등 금융완화정책을 추진했다.
 

▲ 1980년 후반 일본은행의 과도한 완화정책은 자산가격 버블로 이어졌다.


시중에 풀린 돈은 고스란히 부동산과 주식 등으로 흘러들었다. 플라자합의 이후 1989년까지 니케이 평균주가와 도쿄, 요코하마 등 6대도시 땅값은 3배 이상 급등했다.
 
거품은 사치품 수요도 조장해 승용차 수입액이 플라자합의 이후 5년만에 7배 증가하고 다이아몬드 수입도 3배 가까이 늘었다. 런던과 뉴욕 경매시장에 재팬머니가 유입되며 해외 명화를 싹쓸이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너무 늦었다. 저금리에 취한 기업들은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하는데 익숙했고, 은행들도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늘리는데 주력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2년뒤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급기야 1990년을 전후해 리크루트 스캔들, 이토만 사건 등 기업과 은행, 관료들 사이에 형성된 부패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일본은 경제위기에 손써볼 여지도 없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된다.
 


눈여겨볼 부분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다. 일본은 지금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뒤처지는 나라로 꼽힌다. IMF에 따르면 일본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은 지난 2003년 선진 27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27개국의 평균은 0.70점인데 일본은행은 0.13점을 받았다.
▲ IMF(2007) Central Bank Autonomy: Lessons from Global Trends


1980년대에도 비슷했다. 일본은행은 1986년 초 일본경제를 불만 붙이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마른 숲(dry woods)`에 비유하며 과도한 완화정책이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듬해 스미다 일본은행 총재가 또다시 금리인상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정부에 의해 번번이 묵살됐다.

일본 정부가 금리인상 불가론을 들고나온 배경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물가가 안정됐고, 당시에도 국제공조 필요성이 일본 정부의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6~1988년 1% 미만에 머물러 물가만 보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단계가 아니었다. 여기에 관료들 사이에 미국과의 정책협조론이 팽배해있어 일본은행의 정책변경에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상은 일본 경기가 회복궤도에 오른 뒤에도 완화적인 정책이 지속돼야한다며 일본은행을 압박하기도 했는데, 이 때 정부와 언론이 들고나온 논리가 `일본 앵커(anchor)론`이다. 세계 경제의 주도국인 일본이 먼저 금리를 올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적 공조 등을 이유로 금리인상 시기상조론을 펴고 있는 지금의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 교수는 "`앵커론`으로 저금리를 합리화한 일본과 지금의 한국상황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한 유사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통화증발과 재정지출에 의한 경기활황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