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따라 떠나는 주말 드라이빙
by조선일보 기자
2008.11.21 14:21:01
[조선일보 제공] 어스름한 11월의 오후, 시린 코끝을 참고 바람 앞에 서면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층층이 붉은 노을 사이로 밀려드는 까만 물결. 철새들은 한 몸처럼 군무(群舞)를 펼치다 어둠이 내리면 사라진다.
겨울 철새가 돌아왔다. 철새의 몸짓을 사진기에 담으려는 마니아들은 벌써 탐조여행을 떠났다. 유명 철새 도래지로 손꼽히는 충남 서산 천수만과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까지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경비와 시간을 생각하니 왠지 부담스럽다. 수도권에도 주말 아침 훌쩍 떠나도 철새를 맞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서울에서 1시간이면 닿는 김포·고양·파주 일대의 탐조 코스를 추천한다. 사진기를 목에 걸고 망원경을 들었다면 준비는 끝. 추운 날씨를 견딜 따뜻한 외투는 필수다.
경기도 고양시 한강하구 장항습지는 겨울 철새가 까맣게 내려 앉아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2006년 4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후 서식 환경이 좋아 40여종의 철새 2만여 마리가 겨울을 난다. 하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려면 군부대 동의를 거쳐야 한다. 오히려 차를 타고 가면서 철새를 구경하는 '철새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장항습지변부터 파주시 오두산 전망대까지 30여분간 자유로를 달리면 한강변 곳곳에 철새가 모습을 드러낸다.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쇠오리 등 종류도 다양한 편. 특히 철새들이 갈대밭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이룬다. 오전 8~9시나 오후 4~5시에 찾는 것이 좋다.
| ▲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산등성이 위로 천연기념물 재두루미들이 떼지어 날아오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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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5000여마리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 2급으로 분류되는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는 경기도 김포시 북변동 홍도평야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뚝방길에 서면 논 바닥에 떨어진 벼 낱알을 먹거나 우아하게 날갯짓 하는 재두루미를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재두루미는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번식한 후 강원도 철원이나 김포에 와서 겨울을 난다. 한때는 홍도평야에 200~300마리씩 찾아와 논을 덮었지만, 점점 주변에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도로가 나면서 요즘엔 50마리 정도만 찾을 뿐이다. 낮에는 주변으로 차량이 자주 지나가 재두루미가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이른 아침이 관찰하기에 좋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변은 '국내 최대 개리 도래지'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 325호인 개리는 국내에서도 한강 하구에서 주로 발견되는 희귀 새. 전 세계적으로는 6만마리 정도가 남았고, 국내에는 매년 겨울 1000여마리가 날아든다. 한강변 갯벌에 앉아 먹이를 먹는 모습이 곧잘 포착된다. 갯벌 깊숙이 머리를 집어 넣고 식물을 파먹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