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대환 기자
2005.07.08 13:39:46
[edaily] 대통령 선거유세에 나선 한 후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집 값을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뜨려 놓겠습니다.”
옆에 있던 보좌관이 귀속말로 “그건 수요와 공급의 법에 어긋납니다”라고 말하자, 이 후보는 청중을 향해 “제가 대통령이 되면 수요와 공급의 법도 철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이 종종하는 우스개소리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아무도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같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가고 팔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간다. 집값도 그렇고, 농산물 가격도 그렇고, 전자제품 가격도 그렇다. 어떤 상품의 가격이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럼 주식의 가격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주식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주가가 오르고 팔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주가가 내리는 걸까?
신문이나 방송에서 종종 물량압박으로 주가가 하락했다는 얘기를 듣을 수 있다. 팔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즉 공급이 늘어서 주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말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는 듯 싶지만, 실은 전통적 경제이론과는 부합되지 않는 말이다.
주가에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단순히 적용하는 데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주식은 다른 상품과 달리 직접적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주식은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옷에 악세사리로 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식을 사는 것은 주식 자체로부터 어떤 효용을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니고 나중에 주식을 팔 때 더 높은 값에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면 아무도 주식을 사려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주가가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면 모두 주식을 팔려 할 것이다.
그러니까 주식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주가가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지, 주식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서 주가가 오르는 건 아니다.
전통적 재무관리 이론에서는 이를 “주식에 대한 수요는 무한하다”는 말로 표현한다. 주식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거의 무한하기 때문에 주식을 살 사람이 조금 더 많아지거나 더 적어지거나 주가는 이에 영향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전통적 이론이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이론은 더 이상 정통이론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수요라는게 눈으로 볼 수 있는게 아니므로 100% 정확도를 갖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통계학을 이용하면 대략적 추정은 할 수 있다. 이 같은 연구를 수행한 학자들 중 다수는 수요가 무한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요가 무한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이론의 설정과 달리, 현실에서는 누구나 주식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식을 사는 데는 거래비용도 수반된다. 정부 세금이나 각종 규제도 이론과 현실이 괴리되는 이유다.
수요가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살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오르고 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내린다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다시 성립하게 된다. 물량압박이 있으면 주가는 하락하게 된다는 말이다.
어찌보면 그냥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단순히 적용하면 될 걸 가지고 경제학자들이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면도 있다. 아니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아무도 바꿀 수 없다고 말은 했지만, 정작 경제학자 자신들은 이 말을 안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대환 불가리아 아메리칸 대학교 교수]